『뭐 어때』,『츠바키 문구점』을 읽고

우리 삶에 슬픔 말고도

by Juan Lee

오은작가의 산문집 '뭐 어때' 의 60페이지 '슬픔과 함께 잘 살기' 에서 소개된 아래 문구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다가 우리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면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러지 않을까...' 막연했던 생각이 종종 다른 이의 명료한 문구로 표현된 것을 보면 짜릿합니다.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내 생각과 너무 똑같잖아?' 하는 어느 철학자의 책을 발견했을 때는, 마치 언캐니밸리의 불쾌감처럼 그 사람의 어떠한 책도 읽지 않기로 다짐한 적도 있습니다. 사실 그건 질투심이겠지만...)


다시 돌아가서, 지금 제 또래 분들은

세계는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내 자신에 대한 이해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릴 법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과도기의 입구에서 '삶은 슬프다' 는 견고한 명제를 깨달았고

몇 년은 그 허무함에 허우적 거리다가,

점점 그 슬픔을 받아들이며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 성향의 핵심 동력인 '열정' 으로

괴로움이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무던히 살아가는 척 장막을 쳐볼 수 있지만,

Rain (슬픔) , Soothing (위로), Moody (우울), Tranquil (고요) 로

플레이리스트를 정의한 스포티파이 알고리즘 조차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게 그거 같은 립스틱 색조가 수십 개 이름으로 분류되듯이

앞이 안 보이는건 매한가지인 칠흑도 그 분류는 수만가지 인 것 같습니다.

슬픔이 넘실거리는 방파제 경계선을 터덜터덜 걷습니다.

온몸이 젖었지만 계속 발을 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이요.


슬픔이 내 삶의 강한 동반자라는 것을 애초에 인정한 제 삶의 몸짓은

하나하나가 진중하고 사유를 동반합니다.

거기에 열정이 더해지면 무겁고 피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 존재의 당위성을 그것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거기에 한 스푼 더 넣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참을 수 없는 유쾌의 가벼움'

특히 이 시점에 읽게 된 '츠바키 문구점' 에 그 생각은 더 강해집니다.

'삶이 아무리 슬프다 한들, 삶 자체가 슬픔으로만 그득한 것 아닐텐데

왜 모든 것을 슬픔에 함께하는 책임감으로 대하는 것에만 삶의 의미를 둘까 나는..'


좀 더 가볍게, 유쾌하게 걸음을 딛으면 보이는 삶의 사소한 행복과 감동이 나에게도 많습니다.

돌아보면, 바카라 빵티 남작 같은 지금 내 옆의 감사함 사람들은 항상 그때 그때의 칠흑에 함께 있었고

다행히 쓰는 행위를 좋아해서 포포 처럼 그걸 글로 표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삶에서 마주하는 먹는 것, 걷는 것, 보는 것, 함께하는 것들을 굳이 슬픔에 적실 필요도 없습니다.


내 삶에 슬픔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떠올려 봅니다.

그래서 일단 해보자 한것은 가볍게 웃기. 혹은 일단 웃고 가벼워지기.

내가 신바람 박사 고 황수관 박사님 같은 말을 하고 있다니....

또 지금은 이런 시기를 지나고 있나 봅니다.


아이들과 좀 더 이유 없이 경쾌하게 웃으며 떠들며

큐피 처럼 표현을 아끼지 않아보려고 합니다.

우리 삶에 슬픔 말고도 다른 뽀송뽀송한 것들이 많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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