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
"너 까짓 게 뭔데 날 가르치려고 들어?"
언젠가 어떤 분이 요즘 에세이가 뜨는 이유에 대해 분석한 글을 써주셨는데 아 정말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상당히 긴 내용이었지만 제 방식대로 한 줄로 요약해 보면
"너 까짓 게 뭔데 날 가르치려고 들어?"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요즘 예전에 비해 빠이팅 넘치는 자기계발서들이 맥을 못 추는 이유일 겁니다.
우리는 누가 우리를 가르치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낍니다.
여러 가지 기적 중 하나가 "아이가 부모 말을 듣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인간은 본디 태생적으로 반항아의 기질을 타고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단지 반항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단지 시키는 대로 하기 싫다기보다는 나를 가르치는 당신이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그대가 가진 무언가(Something)가 부럽기 때문입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에야 위를 보고 열등감을 느끼고 아래를 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에세이는, 소설은 다릅니다.
소설이 주는 가장 강렬한 매력은 나와 닮은 등장인물을 통해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지나치게 아프지 않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식탁에서 아내가 빌려온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송희구)" 3권을 발견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다며 추천하는 아내에게 장난스럽게 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보다 성공한 사람 책은 보고 싶지 않아~~"
농담처럼 말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니 농담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자청님이 <역행자>에서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다면 자의식 해체를 생각해 보라고, 내 안에 깨어지지 않는 나만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힘겹게 가볍지만 무거운 그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다들 재밌다고 하고 다들 좋다고 하면 굳이 굳이 하지 않는 반골 기질의 저였지만 이 책은 유명세답게 마성이 있었고 오늘 새벽 1시에 3권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버렸습니다.
"아.. 나랑 참 비슷하다 이 분.."
아내와의 결혼 이야기나 음악 이야기 그리고 취업 전 어두웠던 시기들..
장난스럽고 재미난 문체를 보며 이런 어둠이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그저 재미있었다고 하기에는 깊은 여운이 남는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 잘난 맛에 살던 나는 왜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그건 이 책이 "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를 대놓고 지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소설 속에서 약간은 과장된 불완전한 나와 닮은 인간을 함께 비웃으며 함께 깨달을 수 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이 글을 읽으면 "그 부족한 놈"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라는 겁니다.
"소설가로 살아간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소설의 독자로 살아간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충고해 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지만
충언을 하는 신하가 정말 충신이라지만
우리는 쓴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제3자를 통해 나를 보고
제3자를 통해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것
변화를 위해 굳이 "쓴소리"를 들을 필요도
변화를 만들어 주려 굳이 "독설"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소설을 읽고
그저 소설을 읽어주면 됩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역사(hiStory)라 부르니 말입니다.
/The end/
(입금 후 계속)
By 이상적현실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