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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Sep 12.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1)

자기혐오의 굴레 속에서

학창 시절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끔찍해했다. 제일 견딜 수 없는 건 역시 외모였다.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뭐든 다 큰 편이었다. 키가 컸고, 통뼈인 탓에 덩치도 컸다. 길고 까무잡잡한 얼굴과 그 안에 든 눈, 코, 입이 다 싫었다. 머리카락은 너무 구불거렸고 매번 이상한 모양으로 뻗쳤다. 손도, 발도 너무 컸다. 마음에 안 드는 건 끝도 없이 생겨났다. 얼굴에 있는 점, 어깨의 모양, 발목의 두께, 배꼽의 생김새, 심지어 겨드랑이가 접히는 모양까지 다, 


끔찍했다.


사실 나는 외모라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투정이나 실랑이 없이 엄마가 골라준 옷 그대로 입고 다니는 아이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어느 날 또한 나는 순순히 엄마가 묶어준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갔다. 


매번 단발머리만 하다가 처음 머리를 묶은 거였다. 엄마의 손이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고 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아마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실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창가 쪽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가 나를 슬쩍 보곤 옆에 있던 아이에게 속삭이듯(그러나 다 들리게) 말했다.


"쟤 머리 봐, 왜 저래."


비웃음은 나를 향해 또렷이 들려왔다. 순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자리에 우뚝 섰다. 이상하게 고개도 들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뭐라고 한 마디 쏘아주고 싶었는데 정작 나는 그 아이의 발치 언저리에서 시선조차 들지 못했다. 차라리 내게 직접 머리가 그게 뭐냐며 놀려왔더라면 그토록 수치스럽진 않았을 거였다.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화장실로 달려갔다. 세면대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았다. 엄마의 커다란 손이 기분 좋게 훑고 지나갔던 귀밑과 뒤통수의 감각을 떠올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끈을 잡아당겼다. 풀린 머리는 묶였던 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로 삐죽빼죽했다. 나는 거울 속 더욱 꼴사나워진 내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그 남자아이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그 후에 내가 어떤 머리 모양을 하고 교실에 돌아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이 내가 거울 속 나를 인지한 첫 순간이었던 만큼은 기억한다. 


정확히는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그 이후 나는 남들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혼자 길을 거닐 때면 항상 땅만 쳐다봤다. 길목에 또래 남자아이들이 몰려있기라도 하면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멀리 돌아갔다. 부득이하게 그 앞을 지나야 할 때는 고개를 숙인 채 최대한 몸을 접고 빠르게 걸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내게 닿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했고 동시에, 


서글펐다.


나는 스스로가 비참했고, 우습게도 그런 감정 자체를 못나게 여겼다. 

그렇게 나는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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