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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Oct 13. 2021

자꾸 어긋나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펍에 앉아 피시 앤 칩스와 맥주를 먹고 있었다. 내일이면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대화를 자꾸 어긋나게 했다. 


A는 평소처럼 회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사장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미 업무가 있는 상태에서 자꾸 중요하지도 않은 추가 업무를 시킨다는 거였다. 이를 테면 고객사나 수입수출 품목을 다시 분류별로 리스트업 하자며 데이터를 들쑤시거나 올해 목표 환류도 안 해놓고 내년 목표를 세우라고 닦달하는 모양이었다. 


A의 불만은 이런 식이었다.


“어쨌든 내년 목표를 세우려면 주문이 얼마나 들어올지 예상을 해야 하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알 수도 없는 일을 왜 하라는 거야.”


나는 A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를 놓친 것 같아 다시 물었다.


“하기 싫은 이유가 뭐라고?”

“결국 내 일이잖아.”


나는 그 대답에도 쉽사리 수긍하지 못했다. 결국 내 일이 되기 때문에 하기 싫다니, 내게는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니까 싫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물론 밥 먹는 일이 귀찮고 성가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인간이라서 먹어야 하는 것을. 그것도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영양소도 생각하며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당장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어쩌겠나. 해야지. 그것도 나중에 더 엉망진창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해야 한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나 난감함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A는 머쓱해진 듯 말을 덧붙였다.


“할 일이 없으면 몰라. 안 그래도 다른 일 때문에 바쁜데 그거까지 하라고 하니까…”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나는 A가 철부지 같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며 대단한 자아실현을 이루고자 하는 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쌍방 합의를 통해 매달 일을 하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이상 주어진 책무를 다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 일조차 하기 싫다는 건 무슨 심보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나 입밖엔 내지 않았다. 꼰대처럼 굴고 싶지도 않았고, 분위기를 망치거나 A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동시에 맞장구를 치고 싶지도 않아서 어쩌다 보니 어중간한 해석본을 던져 놓았다.


“너는 일 자체에서 성취감을 느끼진 않는 거네? 회사 다니는 것도 돈 버는 목적이 큰 거지?”


결코 따지는 게 아니었다. 내 가까이에도 회사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이가 있었다. 주어진 일만 하되 담백하고 건조하게. 그렇다고 무책임한 것도 아니었다. 할 일만 한다, 괜히 무겁게 굴지 않는다, 는 마인드. 그는 그렇게 할 만큼 한 월급으로 멋진 취미생활을 누리는 이였다.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도 있지. 나와 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것뿐이라고. 그래서 그냥 넌 그런 사람이구나, 물은 것이었다. A는 조금 떨떠름하게 “그렇지 뭐.” 하고 답했다. 아무래도 내 질문이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럼 하고 싶은 게 뭐야?”


환기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회사 싫지. 회사가 싫고, 꼰대들이 싫고, 성희롱하는 아저씨들이 싫지. 바로 그 이유로 안정적인 직장을 관둔 나였다. 아, 회사 싫지. (사실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맞아 맞아. 나도 알지.


“불로소득.”


A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푸핫 웃음이 터졌다. 우리의 질의응답은 꽤 가볍고 유쾌했다. A와의 대화는 언제나 농담의 농도가 짙었다. 그래서 좋았다. 엉뚱한 대답에 나도 한껏 장난스러운 마음이 되어 부러 더 짓궂게 되물었다. 


“돈이 엄청 많으면 뭘 할 건데.”

“그냥 뭐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거지.”

“그러니까 그 하고 싶은 게 뭐냐구.”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마음껏? 그런 거지 뭐.”


나는 갸우뚱해졌다.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


A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매일 8시간씩 회사에 앉아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꾸역꾸역 해가며 남는 시간에나 겨우 놀고먹고 여행 가는 일상 말고, 언제든 원할 때 훌쩍 여행을 떠나서 돈 걱정 없이 이것저것 사고 먹을 수 있는 재력을 바라는 것이다. 사실 모두의 꿈인 그것 말이다. 


그냥 그치, 다 그렇지, 우린 언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듯 공감하고 넘어가면 될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못했다. 굳이 따지고 걸고넘어졌다. 


“그럼 불로소득은 어떻게 얻어?”

“그거야 모르지. 그건 방법이라는 게 없는 거지.”


A는 뭘 그런 걸 묻냐는 표정이었다. 


“없어?”

“그게 있으면 이러고 있겠어?”

“알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거일 수도 있지. 다이어트처럼.”

“아니야. 없어.”


이건 내 안 좋은 습관이었다. 납득이 되지 않으면 물고 뜯고 파고드는 것. 물론 이런 코드가 잘 맞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과는 서로 이런ㅡ누가 보면 서로 공격하듯 주고받는ㅡ질문들 속에서 답을 찾아가거나 헤매는 일조차 재밌었다. 그렇지만 A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그녀는 질문 너머에 있는 의도를 의심했다. 마치 따지거나 질책하는 걸로 느꼈다. 


“그럼 네가 살고 싶다고 한 인생은 결국 실현 불가능한 거네?”


그래서 이 질문은 내 잘못이었다. 


“그래서 베이커리를 해볼까 하고.”


A의 입에서 다시 엉뚱한 답이 나왔다. 나는 순간 어떤 대화의 조각을 놓쳐버린 듯 어리둥절해졌다. 이건 A의 안 좋은 습관이었다. 답하기 싫은 질문이나 순간이 오면 회피해버리는 것. 맞서지 않고 돌아가버리는 것. 


“베이커리를? 왜?”

“그냥 배워두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잖아. 카페를 할 수도 있고.”

“그럼 카페를 하고 싶은 거야?”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혹시 모르지, 누군가 갑자기 나한테 빈 건물을 맡길지도 모를 일이고. 인생 어떻게 될지 몰라.”


우리의 대화는 여전히 반은 농담처럼 반은 투닥거림으로 이어졌다. 아마 A 입장에서는 실없는 소리로 이 대화를 종결짓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눈치 없는 나는, 


“불확실한 인생에 대한 결론이 베이커리야?”


계속 물었다.


“응!” 하고 짧게, 그러나 의지를 담아 대답한 A에게 나는 일종의 전투력, 그러니까 대화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했다. 


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홀로 생각했다. 허상을 쫓고 있구나. 착하고 똑똑한 친구지만 너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 친구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스쳤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만의 꿈이 있을지도 몰랐다. 단지 말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이들 앞에선 꿈이 없는 양 구는 것처럼. 


아니면 정말 구체적인 목표 같은 건 없을 수도 있다. 그녀 말대로 그냥 돈 걱정 없이 한량처럼 살고 싶은 것뿐일지도.


A는 내 질문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대답을 했다. 남들이 들으면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거나(내가 그랬듯) 비웃음 당할 수도 있는 생각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 대답에 내가 느낀 거북함(혹은 거부감)은 철없는 A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나로선 도무지 닿을 수 없는 솔직함이어서일지도 몰랐다. 


내 안에 있는 잣대는 매번 나의 생각을 저지했다. 스스로한테조차 솔직하지 못하게 했다. 일을 하기 싫어?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 엄연히 네 몫인데 할 건 해야지. 일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생각 자체를 차단했다. 


행동이나 결과와 달리 생각과 감정은 자유롭다.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떤 생각도, 어떤 감정도 자연스럽기 때문에. 일하기 싫을 수도 있다. 돈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든, 내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든 뭐든 간에 성가시고 귀찮고 번거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 생각이 공백의 결과로 이어져선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생각 자체로는 어떤 것도 나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A는 내가 친구이기 때문에 털어놓은 것이다. 사실 하기 싫다고. 나는 마치 내가 A의 상사나 동료인 것처럼 그 말을 받아들였다. 네 일인데 네가 하기 싫다고? 그럼 누구더러 하라는 말이야. 책임감이라곤 어딨어? 하고. 


이 대화의 어긋남은 내가 A에게 친구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다. A의 말과 생각에 나를 비추어 놓고는 스스로를 질책하듯 그녀를 한심히 여겼다. 그래서 내 잘못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다시 실없는 농담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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