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바삭, 속은 붉은 핏기로 촉촉한 채끝 등심 한 점을 들어 소금 알갱이를 붙이고 입에 넣으려는 순간,
승이 물었다.
“일 하는 건 어때요? 본인처럼 사는 사람 없을 것 같은데, 친구 중에도?”
사는 건 어때요, 본인처럼 일 하는 사람 없을 것 같은데, 였을 수도 있다. 자음과 모음이 어떻게 모이고 흩어졌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으나 대충 저런 문장이었다.
“그렇죠? 직장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전문직인 친구들도 있고, 뭐.”
나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리며 입 안으로 가져온 고기를 열심히 씹었다. 아무리 부드럽게 구웠다고 해도 등심은 내겐 여전히 질겼다.
적절한 대답이 아니었다. 승은 내게 ‘사는 건 어때요’ 또는 ‘일하는 건 어때요’ 하고 물었지, 내 친구들의 직업 형태를 물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 직장 다니는 친구들도, 전문직인 친구들도 있어요. 그건 그거고, 저는 사는 것도 일하는 것도 꽤 즐겁답니다.” 하고 대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승의 표정과 뉘앙스, 그리고 바로 직전에 나눈 대화를 통해 그의 질문이 결코 순수한 궁금증이나 진심 어린 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승은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이었고 항상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언제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일 하는 사이에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승의 방어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회의를 하거나 심지어는 식사할 때에도 그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지, 속마음은 어떨지 눈치껏 대처해야 하는 부수적인 에너지를 요구했다.
승은 언제나 떠보듯 말을 했다. 일을 부탁할 때에도 ‘이걸 해주면 좋겠는데요.’가 아니라 ‘지금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고 한탄하듯 말을 던져본 뒤 나의 대답을 지켜봤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제가 할게요.')이 나오지 않으면 표정부터 달라졌다. 때론 가볍게 물러나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언짢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뭐 그쯤이야 사실 회사 생활하며 워낙 많이 봐온 상사의 유형인지라 당황스럽진 않았다. 경험상 ‘그러던가 말던가’가 최고의 대응이었다. 나는 그의 부하직원이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역할과 페이 안에서 할 수 있거나 도울 수 있는 일을 할 뿐, 그렇지 않은 일은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그러나 종종 그의 언짢음은 이처럼 일종의 소극적 인신공격으로 발화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리에 함께 있는ㅡ이미 그를 오래 보아온ㅡ사람들은 갑자기 다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분위기를 살피며 묵묵히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곤 했다. 유일하게 눈치 없이 구는 건 나였다.
사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일찌감치 눈치채고 괜히 눈치 없는 척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드러낸 불만은 어떻게든 (그 불만에 연관된 모두가) 함께 수용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어쩌면 그래서 드러내지 않는 불만은 알아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불만을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눈치채고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싫었다. 그러면서 뒤로만 불만을 돌림노래 부르는 에너지 뱀파이어는 더욱더.
그렇기에 모르는 척한 것이다. 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그리고 그 언짢음을 표출하는 그의 질문을.
게다가 어찌나 소극적인지 진짜로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면 ‘칭찬인가?’ 하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수준의 질문이었다.
살아오는 내내 대체로 ‘평범하거나 안전한’ 선택을 두고 돌아서기를 반복해 혼자 먼 길을 돌아가고 돌다리를 위태롭게 건너고 있는 나로서는 사뭇 ‘자뻑’으로 이어질 공산이 높은 질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승의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렇지, 나처럼 이렇게 용감하게 막무가내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그러다 그의 질문 뒤에 숨겨진 진짜를 발견한 것이다.
‘그 나이 먹고 그렇게 대책 없이 사는 건 어때?’
아니, 진짜 진짜는 이럴 것이다.
‘비참함을 좀 느껴봐.’
한 번 되물어볼까 생각했다.
“저처럼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건데요?” 하고 말이다. 사실 정말 순수하게 궁금하기도 했다. 나도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답하는 동시에 굳이 말을 이을 필요도, 어떤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다.
내 대답은 그렇게 얼버무려졌고, 각자의 젓가락은 채끝 등심을 한 점 더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