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일기 6
...
하...
꿈일거야.
눈을 감으면 다시 잠들 수 있을거야.
...
아닌가보다.
꿈이 아니구나.
내 생애 첫 수술이 끝났다. 잠 기운이 사라짐과 동시에 둔했던 통증이 뾰족한 입자로 잘게 잘려 오른쪽 겨드랑이와 목, 가슴 곳곳에 퍼져 갔다. 꿈이었으면 깨길 바랐는데 불행히도 꿈이 아니었다.
갑상선암 수술은 칼로 목을 절개하거나 로봇 장비로 겨드랑이를 절개하는데 난 후자를 택했고, 그것은 전자보다 통증이 더하고 회복이 오래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어디서 흠씬 두들겨 맞고 정신이 나갔다가 깨어난 것 같았다. 눈을 꿈벅이는 동안 이 낯선 천장은 어디의 것인지, 이 웅성거리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이 둔한 통증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간호사 분들은 어느새 내 옆으로 와 내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하. 깨우지 마시지. 정신이 돌아올수록 더 아파지는데. 간호사님의 부름에 내가 직접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는지, 온 얼굴을 구겨 고통을 표한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술방에서 끊어진 기억은 병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간호사님이 엄마에게 날 재우면 안 된다고 얘기한 것을 들었으나 이후 기억은 조각조각 나 있다. 남아있는 마취에 기대 고통이 덜어지길 바라며 잠의 끈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기억에는 엄마와 아빠는 물론 오빠까지 침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윗 지방에 살고 있는 오빠가 수술한 동생을 위해 바쁜 일을 잠시 접고 친히 부산에 내려와 줬다. 병문안을 핑계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주에 있을 명절까지 잘 쇠다 갈 예정이었겠지. 저녁 시간, 밥 한 술 뜨는 날 보기 위해 모두 기다렸으나 가슴 위와 목을 헤집어 놓은 수술의 영향으로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권유에 못 이겨 겨우 몇 입 우겨넣고는 다시 누우려는데 엄마의 얼굴 빛이 어두웠다. 수술 받은 딸을 안쓰러워하는 표정과는 다른 류의 것이었다. 눈치를 살피니 엄마가 작게 말했다.
외할머니가 다쳤대
응? 엄마 외할머니는 아니겠지? 갑자기 외할머니 얘기가 왜 나와?
수술하기 전날, 난 엄마 핸드폰으로 대구행 기차표를 구입했다. 다음주가 설 명절인데 나 때문에 외갓집을 안 가겠다는 엄마의 결정을 무시하고 아빠, 오빠 것과 함께 표를 3장 끊었다. 1년에 딱 두 번인 엄마의 친정나들이를 내가 깨뜨릴 순 없었다. 1년 중 363일을(혹은 364일을) 시아버지와 함께 보내는데 이틀은 엄마도 엄마(외할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야 하지 않겠나. 다음주면 대구 외할머니댁은 여느 명절 때처럼 왁자지껄 시끄러울 것이다. 나 때문에 소진된 가족들의 에너지가 행복으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다치셨다니? 엄마 표정을 보면 요리를 하다 칼에 손을 베인 정도의 다침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다치셨다는 말 뒤에 아무런 설명을 붙이지 않는 엄마를 보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우리 할머니? 왜? 어디가? 많이 다치셨대?"
“교통사고래. 얼마나 다치셨는진 모르겠네."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 가족 중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본 사람이 없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개연성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이야기인데?
잠깐. 좀 전에 내가 밥을 먹고 침대에 누운 것 같은데.
그래. 이거 꿈이구나.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꿈이라기엔 그 충격이 너무도 선명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잤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잠을 그냥 안았다. 그렇게 수면에 잠겨 의식이 깊이, 서서히 가라앉는 동안에도 간호사들은 돌아가며 내 혈압을 체크했고, 해는 알아서 뜨고, 아침 식사는 눈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수술 다음날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나는 '내일이면 해가 떠오를 것'이란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다. 자연의 섭리대로, 태초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성실한 태양 덕에 '매일'이 시작된다. 세상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당연하듯 나의 하루도 매일 시작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는 오늘 하루가 시작되는 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는데 새로이 시작된 날에 내가 존재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새 날이 나의 것이 되는 일이, 그래서 내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내가 경험하는 이 기적이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 수 있음을,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수술방에서 깼을 때 이 통증이 꿈이길 바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외할머니의 사고 소식이 꿈이길 소망하였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내게 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예정보다 일찍 대구로 향했다. 내가 예매한 설날 대구행 기차표는 반환되었고, 난 수술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 부모님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