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석증 일기 4
19.02.01
허…
허…
눈을 뜬 것 같긴 한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
"저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저 좀 봐주세요. 너무 아파."
애원하던 내 목소리는 수술방의 싸한 공기와 맞닿아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수술방 문이 열렸고 남편이 다가왔다. 하지만 남편을 바라볼 겨를도 없이 그냥, 너무 아팠다. 신음조차 낼 수 없었지만 누구에게라도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애써 입을 열었다.
“나 좀 살려줘… 나 진짜 아프단 말이야…”
분명 수술 후 통증이 담석증 통증보다 덜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개뿔. 담석증 통증이 100이라면 수술 후 통증은 95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수술 후 무통주사를 놓지 않고 있었다. 아빠가 간호사 분에게 들은 말이, 내가 토하는 바람에 무통주사를 맞으면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가 심해질 수 있어서 얼마간은 무통주사 없이 있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워 무통주사를 맞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흡!
쓰레기통을 잡고 구역질을 해댔다. 반사적으로 배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두어 번 구역질을 하니 수술 부위가 너무 아파 구토를 유발한다는 무통주사를 내 몸에 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맨몸으로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지만...
엄마가 퇴근 후 병원으로 달려왔다. 엄마를 보니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의사가 와서 뭐라 말하는데 잘 안 들렸다. 아마 조금 더 참아보자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담석증 통증의 95% 강도로 3시간을 얻어맞다 보니 조금 있으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사실 시간은 3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생각이 안 난다. 부모님은 간호사에게 원래 수술 후 이렇게 환자들이 아파하는지 물었는데 보통은 잘 견딘다고 한다. 나는 많이 아파봐서 통증을 잘 참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가... 뒤늦게 생각해보니 내가 인내심 없는 사람처럼 보여졌을까봐 기분이 안 좋았지만 당시에는 남 눈치 볼 여력이 없었다. 그저 아프다며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토하더라도 무통주사를 맞기로 했다.
.
그런데 기대와 달리 무통주사를 맞아도 통증은 똑같았다. 간호사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무통주사에는 마약 성분이 들어가 있어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소량만 자동으로 투여된다고 했다. 통증이 심할 때 주사 줄에 매달린 버튼을 누르면 주사가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것도 누르는 대로 다 투여되는 것은 아니다. 계속된 통증에 갑자기 화가 나서 버튼을 막 눌러댔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차츰차츰 통증이 사그라들었다. (마약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 한 방울의 무통주사가 그렇게 간절해질 줄 누가 알았을까. 미리 무통주사를 맞았다면 3시간동안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아도 됐을텐데, 당시의 나는 통증보다 구역질이 더 무서웠다. 무통주사를 택하는 순간 날 죽이려 달려드는 구역질도 세트로 올 것이기 때문에 그냥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만 잘 감수해 보자는 마음으로 버텼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무통주사를 못 맞을 것이다.
고통에 허덕이느라 온 몸에 힘이 빠졌고 곧 잠이 들었다.
"수술방 밖에 있는 모니터 보니까 니가 회복실로 갔다 하더라고. '아, 이제 편안하게 얼굴 보겠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 수술이 잘 끝났으니까 회복실로 갔을 거 아냐. 그래서 회복실 앞에 가서 너 기다렸지. 근데 저 안에서 듣기도 힘든 여자 신음소리가 들리는거야. '와, 저 여자 진짜 아픈가보다. 어쩌냐' 싶었지. 회복실 문 열리면서 그 여자가 나오는데..."
남편은 일그러진 얼굴로 당시를 회상했다.
"근데 그 사람이 너였어."
한숨을 쉬더니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니가 아파가지고 어쩔 줄 몰라서 몸을 막 떠는거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남편의 표현이 과장된 것 같아 핀잔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갑상선 수술할 때는 추워서 몸이 막 떨렸는데 이번엔 안 추웠어. 떨긴, 무슨."
"아니, 떨었다니까! 아파서 그랬는지 몸이 막 덜덜거렸다고. 그러면서 수술이 잘못된 것 같다고, 이렇게 아플리가 없다고, 살려달라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막 말하는데 와, 진짜..."
의자에 앉아 있던 남편은 등을 뒤로 젖히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남편은 "그렇게 아프면 무통주사를 맞자."라고 했지만 나는 "토하기 무서워." 라면서 끝까지 버텼다. 그러면서도 아프다고 울어대고. 나는 남편을 미치게 만들었던 "나 좀 살려줘"를 되뇐 후 무통주사의 도움으로 일찍 잘 수 있었지만 남편은 하루종일 들었던 내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아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