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지나온 20대의 기록, 그 마지막

안녕, 20’s

by 새벽숨

19.02.07


1월 말에는 극심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고 2월 초 결혼 후 첫 명절을 못 지키면서까지 수술을 진행했다. 담석증 때문에. 그래, 그런 줄 알았다. 초음파를 보아도, CT를 보아도, 누가 보아도 내 몸에는 2cm가 넘는 돌덩어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돌덩어리가 돌이 아니었다니.


수술 전, 담석증으로 수술 받은 사람들의 소중한 후기를 보았다. 그들은 수술 직후 자신의 몸에 있던 담석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받는다고 했다. 수술 당일에는 내 몸에 무엇이 빠져 나갔는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돌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퇴원 날, 간호사 분이 퇴원 시각을 알려주러 들르셨길래 내 돌의 행방을 물었다. 그런데,


"그 돌, 침대 옆에 없던가요?"


그분의 말에 따르면, 보통 환자가 수술방에서 나갈 때 링거 옆에 돌이 걸려 있다. 남편이 경황이 없어 기억을 못하나 싶었는데 남편은 물론 가족 모두 그 돌을 구경하지 못했다. 땅에 굴러다니는 돌이 아니라 내 몸에서 떼어낸, 한때 나의 일부였던 그 귀한 것을!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수술방에 물어봐도 모를텐데..."


수술 후 바로 받았어야 하는 것을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물어보니 간호사 분도 당황할 만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더니 "아, 여기에 돌을 준 게 아닌가..."라고 혼잣말을 내뱉은 후 수술방에 연락해 보겠다고 말하며 병실을 나갔다.


수술 당일 그 많은 일을 겪고 나서 병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였다. '설마 돌을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싶었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과 화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 돌이 뭐라고 난 이렇게 애타게 찾고 싶은 걸까' 싶고 '남들이 보면, 아니 간호사 분들만 해도 내가 이렇게 돌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걸 보면 얼마나 웃길까' 싶었지만 어떤 돌 시키(아깐 귀하다더니)가 날 그렇게 고통스럽고 괴롭게 만들었는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떤 공격과 스트레스를 가한다 해도 그 아이는 아무 상처도 받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까와 다른 간호사 분이 들어오셨다.


"보통 수술방에서 돌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록을 하거든요. 그런데 수술방에서도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럴 경우엔 집도의가 돌을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던데, 우선 저희가 수술하신 과장님께 다시 확인해 볼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친절한 설명에 한결 침착해졌다. 하지만 또 새로운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의사선생님이 돌로 직접 설명해 주시려고 가져가셨던걸까?', '아니면 돌이 너무 커서 분해해야 했나?', '그런데 내가 물어보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그 과장님이 돌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그때,


"환자분, 과장님이 직접 설명해주신다고 하셔서요. 이거 가지고 진료실로 가시면 돼요."


면담요청서를 받아들고 진료실로 들어가니 집도의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내셨다.


"몸 속에 있던 게 담석이 아니라 담석슬러지였어요."


"슬러지요?"


슬러지. 어떤 것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담석이 되기 전 상태. 쉽게 말해 모래라는 것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돌이 아니었던 거예요?"


"네, 돌이 아니라 모래가 단단하게 뭉쳐진 상태였는데 잡으면 바스라지는 거였어요."


돌을... 돌을 볼 수가 없다니...


"그럼 모래가 뭉쳐진 덩어리같은 것도 없었나요?"


아쉬운 듯 말했는데 반사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하죠. 그거 뭐, 그냥 모래라고 보시면 돼요. 잡으면 바로 부서지는데 어떻게 통에 담아요?"


적당히 가벼운 목소리에 침착함을 얹은 투였다. 정 없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들리는 그 말에 '어쩌겠나' 싶으면서도 '나는 심각한데 왜 저렇게 기계같이 말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씁쓸했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처음 담석슬러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관련 정보도 아는 게 없었고 당황해서 무언가 물어볼 경황도 없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수술한 게 억울했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담석슬러지라면 약물치료를 먼저 시도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CT로 확인했을 때 돌인지 슬러지인지 왜 확인이 안 되었을까? 의사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이제 결혼한 지 두 달 됐는데 첫 명절부터 수술 받아 아픈 애로 낙인찍힌, 그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진료 시 물어볼 질문들을 적어 나갔다.


퇴원수속을 마치고 약 처방을 기다렸다. 그런데 보통 수술 후 앞으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씻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얘기해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안과에서 일하는 나는 수술 후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해주는 걸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병원은 내가 물어보기 전까지 뭐 하나 똑부러지게 얘기해주는 게 없었다. 다들 친절한 듯한데 물어봐야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편하지는 않았다. 수술 후 상처 부위에 붙인 밴드를 떼지 않은 상태로 퇴원하기 때문에 샤워는 가능한지 간호사 분께 여쭤봤다. 그런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샤워는 하시는데 상처부위에 물이 되도록 안 닿게 해주시는 게 좋아요."


배에 구멍을 3개 내고 수술을 했는데 거기에 물이 안 닿게 씻으라면 머리만 감고 하체만 씻으라는걸까?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물어봤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대답이다.


19.02.12


내 몸에 있었던 것이 담석이 아니라 담석슬러지인 것을 안 후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수술은 과연 잘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열심히 조사해 본 결과 담석슬러지라도 나처럼 2cm가 넘는 정도라면 약물치료는 어렵다고 한다. 광고성 블로그가 아닌 의사가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본 글이니 신뢰해도 될 법 했으나 그래도 내 집도의에게 직접 확인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다음 진료 시 물어보기로 했다. 질문은 의사 입장에서 기분 나쁘지 않게, 그리고 요점만 간략하게 정리해 갔다. 여전히 쉽고 가벼운 말투였지만 인간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담낭슬러지라도 2cm가 넘을 정도면 담낭 기능도 떨어져 있고 약물치료 효과가 적어서 수술하는 게 맞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수술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닌데 더 조심해야 할 것은 없는지 걱정이 되어서 여쭤보는 거니 이해 부탁 드려요.


네네. 괜찮아요.


인터넷에서 담석슬러지 사진을 봤는데 돌처럼 뭉쳐보이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왜 저는 돌처럼 보였어요?


슬러지도 담석과 같은 성분이고 새벽 씨 상태는 돌이 되기 직전이었어요. 약물 치료를 해도 돌은 언제든 재발하기 쉽고 통증이 일주일 간격으로 강하게 나타났으면 수술을 하는 게 맞아요.


처음 진료볼 때 만약 제 것이 담석이었다면 주변에 작은 돌들도 있을 거라 하셨잖아요. 제 것은 작은 돌 하나 없이 모래로만 뭉쳐져 있던 거였어요?


네. 사진상에서는 큰 돌로 보여서 주변에 작은 돌들도 몇 개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새벽 씨는 슬러지가 뭉쳐진 케이스라서 작은 돌들은 없었어요.


제 지인도 담석증으로 수술을 받았는데요. 돌 색깔이 노란색이었는데 그게 콜레스테롤 때문이라고 담당 의사가 설명해 줬대요. 그래서 저도 제 돌을 보면 원인을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2년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는데 올해도 이런 수술을 받으니까 '젊을 때부터 이러면 나중엔 어쩌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먹는 걸 조심하면 괜찮은 건가요?


새벽 씨 피 검사 결과를 보면 먹는 건 크게 조심할 필요 없구요. 오히려 관리가 잘 되고 있어요. 우선 돌이 가장 많이 생기는 조직이 쓸개인데, 이미 쓸개는 떼어 냈으니까 '돌이 또 생기면 어쩌지'라는 생각은 굳이 안 하셔도 돼요. 젊은데 자꾸 병이 생기니까 불안해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는데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더 안 좋아질 수 있거든요. 마음을 편히 먹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조직검사 결과도 나왔는데 그냥 염증만 좀 있었고 별 이상은 없습니다.






27살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29살에 담석증 수술 받았어요.



이 한 줄이면 끝날 병력을 14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 안에는 동의도 없이 내 몸에 터를 잡은 불청객과 맞닥뜨린 나와 가족이 있다. 그 무례한 손님과 마주한 첫 느낌이 어떠했는지, 그에게 압도되지 않으려 마음을 어떻게 지켜냈는지, 남의 몸에서 주인 행세하는 그를 내쫓으려 어떻게 움직였는지 꼼꼼히 남기려 노력했다.


나를 찾아 온 병과 싸우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수술 날 기도와 응원으로 함께 해 준 지인들, 한창 바쁠 시기에 긴 병가를 낸 나를 대신해 고생해 준 동료들, 내 퇴원을 위해 귀한 연차까지 써 가며 주차가 험난한 병원에 한달음에 달려 온 초보 운전자(였던) 영혼의 단짝, 길에 주저 앉은 날 지나치지 않고 보호자가 올 때까지 지켜 준 이름 모를 천사들, 내 몸의 문제를 발견하고 무사히 수술을 마쳐 준 의사 선생님들, 새벽에도 피를 뽑고 혈압을 재며 내 건강을 체크해 준 간호사님들, 병실이 무섭고 어색했던 나를 웃음으로 맞아주고 병원 밥을 통 먹지 않는 나를 위해 편의점에서 각종 간식을 사다 준 환자 분들.


그리고 내가 이겨야 할 싸움에 나보다 더 진심이었던 가족들.


내가 건강하게 서른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 준 모든 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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