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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Jun 16. 2022

배려 있는 대화의 기술

말 조심 영역 - 억양, 단어, 타이밍

아기를 데리고 장기 출장 간 남편을 따라 온 지독한 아내, 나 김새벽은 남편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아기와 격주로 호캉스를 누리고 있다. 아기 밥은 분유와 시판이유식으로 해결하고 아기 옷은 매일 손빨래를 해서 건조대에 걸어둔다. 육아를 하는 와중에 틈틈이 내 일도 하면서 이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바로 ‘청소시간'. 매일 달라지는 방 청소 시간때문에 호텔 청소 시간인 12시부터 내 심장은 빨라지기 시작한다. ‘12시부터 나가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15시까지 공식적인 청소 시간이기 때문에 매일 3시간 이상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프론트에 물어보니 청소 시간은 고정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물론 아이와 나의 컨디션에 따라 청소를 건너 뛰기도 하지만 방이 건조해서 먼지가 많고 집에서 사용하는 침구가 아니니 깨끗한 시트로 교체 받고 싶었다. 그래서 최소 주 3회는 청소 서비스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갈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청소를 하러 오신 메이드 분과 대면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말 조심’의 영역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대본(?)에서 알 수 없는 요소인 < 억양 > 부터 살펴보자면, 상대의 말은 경상도 말투에서도 불친절에 가까웠다. 그리고 < 단어 >.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을 마주 보고 튀어나온 첫 마디가 “언제 나가요?”라니. “청소하러 왔는데요.”라고 말해도, “아, 아직 계시네요. 언제쯤 다시 올까요?”라고 해도 알아들을텐데. 손님에게 시간 선택권이 많지 않다면 하다못해 “아구, 지금 청소 못하면 마지막 타임에 와야 하는데 괜찮아요?”라고 말해줬어도 참 좋았을텐데. '언제'와 '나가요'라는 말을 선택함으로써 취조하는 뉘앙스가 형성되었다. 참고로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내는 소리, 예를 들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아구’ 혹은 정말 별 뜻 없는 ‘아’만 붙여줘도 말이 상대에게 닿을 때 보다 부드럽게 안착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 타이밍 >. 말의 시작과 끝에는 문장을 열고 닫는 단어뿐 아니라 들리지 않는 호흡도 있다. 입으로 형성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호흡도 말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그러니 대화를 할 때는 상대의 말이 내게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상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에 달려나오는 호흡을 자르고 내 말을 던진다면 상대는 본인의 말을 가로챈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추임새나 격한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사는 예외로 삼고 싶다.) 서로의 말이 오가는 사이, 그 간격이 너무 가까우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가 바로 보이지 않는 이 호흡 때문이다.

위 대화에서 나는 상대에게 ‘한 시쯤 오는 줄 알고 못 나갔다’라고 얘기하려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는 “그럼 마지막 타임에 와요?”라는 말을 던졌다. 그야말로 던진 것이다. 말을 받을 준비가 안 된 나에게.

나는 나갈 준비를 못했고 아이 밥을 먹이다 급작스럽게 울 초인종 때문에 당황한 상황이다. 물론 상대는 청소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내규 방침에 따라 청소 시간에 정확히 초인종을 눌렀다. 오히려 본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고객 탓에 본인이 더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 우리 둘 다 당황했다고 하자. 그래서 서로를 배려할 말을 미처 찾지 못했다 하자. 그런데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말이 꽤 공격적이라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이후 나는 본가에 갔다가 일주일을 보낸 후 다시 호텔에 왔다. 그리고 저번과 같은 상황 맞닥렸다. 아이 밥을 먹이고 있을 때 벨이 울린 것이다.

이번엔 정말 메이드 분이 오시기 전에 나가려 외출복도 입었고 유모차도 세팅해 두었다. 그런데 아이가 이유식을 먹고 싶지 않았는지 먹는 속도가 느렸다. 전보다 착잡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이번 대화를 통해 정반대의 감정을 느꼈다.

“아, 죄송합니다. 아직 계시네요.”

당연히 죄송해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감사했다. 그리고 “아직 계시네요.” 이 말은 사실 그대로를 서술한 것인데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미처 나가지 못하셨군요. 당황하셨겠네요.”라는, 하지도 않은 말이 들리는 듯했다. 이유식 숟가락을 들고 있는 내 모습과 밥을 주다 말고 사라진 엄마를 찾는 아이의 “엥-”소리에 상대는 “에고, 아이가 있나 보네요. 어쩌나.”라고 말다. 역시나 사실뿐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네ㅠ 아이 밥만 먹이고 나가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ㅠ 저 옷도 다 입었고 유모차도 다 펼쳐놨는데요ㅠ”라며 주책을 떨 뻔 했다. 이번의 대화도 전과 동일하게 마무리되었다. 상대는 다른 곳을 먼저 청소하고 오겠다라고 말한 후 돌아 나다.

두 메이드 분 모두 내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내가 지금 청소를 해야 하는데 언제 나갈 것이냐.’ 하지만 그 물음을 표현했던 말이 내게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한 분은 내게 따졌고 다른 한 분은 본인만큼이나 곤란해하는 내 마음을 다독였다. 두 번째 분은 오늘도 우리 방을 청소해 주셨는데 아이가 있으면 물을 많이 쓰게 된다고 각 방에 두 병만 허용된 물을 우리 방엔 네 병씩 올려 다. 어쩌다 날 만나게 되면 아이가 너무 귀엽다며, 아이가 있으면 매번 나가기 힘들텐데 로비라도 몇 바퀴 돌고 오시라는 배려 가득한 말씀을 해주신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체득된 말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상대가 불편해할 만한 말이 계속 튀어나온다면 말을 다시 배워야 한다. 사회성을 갖춘 대화의 기술을.

일단 내가 속한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 안에서 연습을 많이 해야 겠다. 내 연습 상대가 되어 줄 남편… 잘 부탁해요.

자신을 기다리느라 늦게 저녁을 먹는 나를 배려하는 남편. 좋은 스파링 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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