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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Nov 09. 2022

만 1세. 엄마를 뿌리치다

누운 자세 매일 새로운 표정을 보여주던 아이는 어느새 앉은 자세로 각종 개인기를 섭렵하여 보여줌으로 어른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다 돌이 지나자마자 갑자기 우뚝 서더니 온 신경을 집중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그리고 이제는 직립보행하는 인간이 되어 집안을 누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몸만 자라는 줄 알았더니 꾀와 눈치도 자랐고 제법 고집도 세져 의사표현을 확실히 한다. 심지어 음식에 대한 기호가 생겨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엄마를 긴장시킨다. 우리 사람 ‘로디’는 이렇게 돌이 지나 만 1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한 살인 아이에게서 엄마 품을 떠나는 모습이 보이다니.




우리는 분리수면을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잔다. 아이가 침대 가드에 쿵, 쿵 부딪히는 소리에 깨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의 움직이는 소리에 잠을 깬 나는 아이가 어떻게 자고 있는지 살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며 잔 탓에 머리와 발이 반대로 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이가 말도 안 되게 천사같이 보여 괜히 자세를 고쳐주고 싶었다. (그냥 아이를 안고 싶었다는 뜻이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조심히 아이 침대로 가서 아이의 머리와 몸을 들어 원래 위치로 다시 눕혔다. 그런데 아이를 안고 나니 그 욕심은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싶다는 욕망으로 번졌다. 안고 자는 버릇을 들이면 엄마도, 아이도 편히 잘 수 없다는 말을 들은 후 웬만해서는 안고 자지 않았다. 하지만 욕망에 이기지 못한 나는 이윽고 아이의 오른편에 조심히 누웠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아이 목을 들어 그 아래로 왼팔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내 팔뚝에 안착한 작고 동그란 묵직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꿈나라로 떠난 천사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 올렸던 아이의 머리를 조심히 내 팔 위로 올려 두려는데 갑자기 아이가 낑낑대더니 반대편으로 돌아눕는 것 아닌가. 당연히 내 품을 파고 들어올 거라 생각했던 나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잠결에 한 행동이겠거니 싶어 다시 아이를 내 편으로 돌아 눕히려는데, 아뿔싸. 알아서 잘 자는 아이는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아이는 울음을 크게 터뜨리며 털썩 앉아 버렸다.


자다 깰 때는 몸이 피곤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심하게 울고 빨리 그치지 않는다. 침실을 가득 채운 사이렌은 아이가 내게서 완전히 분리된 후에도 한참을 울리다 멈췄다. 나는 조용히 내 침대로 돌아가 한동안 귀에서 뛰는 심장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아이가 원하는 거리에서 아이를 지켜줘야 하는구나, 하고. 그날 이후로도 두어 번 아이를 안고 자보려 했으나 역시나 불편한지 아이는 무의식 중에도 내게 등을 돌렸다. 이후 나는 엄마의 역할을 ‘아이의 걸음마다 졸졸 따라다니기보다 위로와 휴식이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는 것’으로 정리했다.


하긴. 내가 원했던 엄마상도 그러했던 것 같다.


1. 아이가 한창 놀다가 문득 생각 나 고개를 들면 언제나 그 시야 안에서 웃으며 손 흔들어 주는 사람.

2. 아이가 울면서 달려오면 전후맥락 따지지 않고 넓게 편 팔로 폭 안아주는 사람.

3. 아이의 마음이 복잡해 보이면 캐묻기보다 조용히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4.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에게 충고보다 믿음을 주는 사람.


등등. 로디가 원하는 엄마상은 어떤 것들일까. 일단 팔베개 해주는 엄마는 아닌 것 같다. 일단은.




로디.


엄마는 비록 똥손이라 소울푸드니, 엄마표 음식이니 네 평생 기억에 남는 요리를 만들어 줄 자신은 없지만 하나는 약속할게. 너를 믿는 모든 사람 중 가장 끝 편에 서 있을게. 절대 나가 떨어지지 않을게. 돌다 돌다 지칠 때까지 돌아다니다 엄마가 생각날 때 고개를 들면 너가 볼 수 있게 여기, 딱, 네 시선이 닿는 곳에 있을게.


평안히 잘 자고 내일 만나.


조금만 더 안겨있어줘. 넌 아직 아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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