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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Apr 18. 2024

재밌는 건 100번해도 재밌어


신생아를 갓 벗어난 4~5개월 아가들에게는 페트병, 비닐, 휴지 쪼가리도 훌륭한 장난감이다. 지겨워하지도 않고 어찌나 잘 들고 노는지. 소리를 내보고 질감을 느낀다. 물론 입으로 탐색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그때마다 엄마의 “지지!” 소리를 듣지만 주변의 것들을 만지고 맛보는 감각들로 종일 즐거울 수 있는 때다.


출장 간 남편 따라 호텔에 몇 주를 묵었을 때 가장 효율이 좋았던 장난감은 에듀테이블도, 국민 모빌도 아닌 포스트잇이었다. 종이를 아이와 내 볼에, 손등에, 무릎에 붙였다 떼었다 하면 30분은 족히 놀 수 있다. 물질적으로는 분명 가성비 좋은 놀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기와 체력이 쭉쭉 달린다. 어른인 나에겐 로디의 저 장난감들이 재활용 대상으로만 보이니까.


30개월이 된 로디는 어떨까? 여전히 재밌는 건 백 번을 해도 재밌는 때다. 하지만 이제는 곱게 한 자리에서 엄마의 표정만으로 즐거워하지 않는다. 누운 자세에서 정강이에 로디를 태우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해주면 “한 번 더!”의 외침이 이어지고 그렇게 대여섯 번 해주면 다음 날 허벅지를 제대로 못 쓴다. 로디 익스프레스가 따로 없다. 그래서 가능한 내 몸을 아끼면서도 로디가 중독을 느낄 만한 놀이를 찾는다.


그래서 애용하는 놀이는 까꿍 놀이. 아직도 까꿍놀이라니, 싶지만 눈을 손으로 가렸다 열며 까꿍! 하는 진정한 까꿍에서 조금 진화된, 하지만 숨바꼭질로 발전되지는 못한 중간 단계의 어떤 것이다.


굳이 정확히 설명해보자면 ‘엄마 등 뒤에 있는 로디 찾기’ 놀이.


규칙은 간단하다. 로디를 등지고 손으로 망원경을 만든 다음 로디를 찾으면 된다.


“어디 갔쥐~? 우리 로디 어디있을까아? 책장 뒤에 숨었나? 아니면 쇼파 밑으로 들어갔을까? 없네에~ 그럼 식탁 쪽으로 갔나?” 마간 집 안의 방, 사물들을 읊다가 등을 천천히 돌며 “로디, 여깄네!” 하며 로디를 안으면 된다.  


중요한 것!

1. 엉덩이를 떼는 순간 로디는 뛰어다니며 숨을 것이기에 한 자리에 앉아서 입만 놀릴 것. (체력 아껴!)

2. 너무 빨리 로디를 찾으면 로디의 실망이 크기에 로디를 등진 채 30초 이상 찾는 시늉을 할 것.  


언제 엄마가 자기 쪽을 바라볼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그 떨림에 새나오는 웃음소리를 간신히 참으면서 로디는 엄마를 기다린다.


내가 등만 돌리면 그만인데 로디는 2년을 넘게 까꿍 놀이를 진심으로 즐긴다.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 삶이라면 이 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굴러가는 공을 본 어른의 행동과 두 살 아기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다르다. 아이는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공을 계속 땅에 던지고, 굴러가는 모습을 백번이고 바라볼 수 있다. 왜 그럴까? 공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고 이성으로만 인지한다면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 두세 번, 네다섯 번 경험해도 새로울 일이 없다. 즉 반복해서 보면 지겨워진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 구르는 공을 보는 것은 일차적으로 재미지 지적 경험이 아니다.
 ~ 교육과정을 거치고 나면 대부분은 감탄하는 능력을 잃는다. 이제 자신은 사실상 모르는 것이 없으며, 감탄은 배우지 못한 증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더 이상 기적으로 가득하지 않고 사람들은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中>




사랑하는 로디.


엄마가 늘 하는 생각이 있는데,

세상을 풍요롭게 살려면 가능한 많은 감각을 느껴야 한다는 거야.


지천에 널린 것이 나뭇잎인데 그 어떤 것도 같은 것이 없대. 지문처럼.

색, 촉감, 잎맥의 모양이 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이파리도 그 주변 환경에 따라 달리 보여.


생각해보면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매일 걸었던 길이라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

시간도 흘러가버려서 지금과 똑같을 수 없으니 우린 늘 새로운 때를 살고 있지.


엄마도 어릴 땐 새로움을 느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니 감각이 납작해진 것 같아.

어제를 오늘과 같게 느끼고 그런 오늘이 내일도, 모레도 이어져.

일주일을, 그렇게 한 달을 여느 때와 다르지 않는 날로 여기다보면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어.

하루하루 소중한 날들이 정말 많았을 텐데.


엄마가 예전에 쓰던 핸드폰엔 로디 어릴 때 사진으로 가득해.

너무 소중해서 백업을 두 번이나 했고

새 핸드폰으로 바꿀 때 용량을 두 배 큰 걸로 선택했어.

그런데 지금 엄마 핸드폰엔 로디 사진이 별로 없어.

어제의 로디가 오늘의 로디와 같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엄마 곁의 로디가 당연하게 여겨질까봐 무서워.


이전처럼 로디의 예쁨을 매일 새롭게 발견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로디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니까.

매일 기적 같은 존재이 분명하니까.


엄마가 널 찾는 순간을 백번이고 즐기는 너처럼

로디가 엄마에게 달려오는 순간을 백번이고 감격하는 엄마가 될게.



장난꾸러기 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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