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알게 된 신랑은 깍듯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어. 직장에서 깍듯하게 구는 사람이 회식자리에서는 내게 츤츤거리면서 자꾸 장난을 거는 모습이 새로웠지. 전혀 다른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달까.
또 하나, 신랑은 나한테 관심이 있으면서도 9살이라는 나이 차 때문에 사귀어보자고 하거나 좋아한다고 고백하기 힘들었대. 본인은 30대 중반이라 부모님이 선보라고 하시는데, 나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20대 중반의 나이였으니 말이야.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 자꾸 연락하다가도 물러서고...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어. 신랑은 의도치 않았지만 밀당을 하게 된 거고, 나는 그것 때문에 흔들렸던 것 같아. 아마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사이가 아니었고, 이 남자가 일방적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했으면 나는 평소처럼 오히려 거리를 두고 교제 여부를 고민했을 것 같아. 그러나 어떨 땐 살갑다가 어떨 땐 냉랭한 남자를 직장에서 매일 봐야 한다는 건 계속 걸리적거리는 거스러미처럼 엄청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지.
어떤 분이 댓글로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여자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어.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열 번 나쁘다가도 한 번 잘해주면 상대적인 고마움과 기쁨이 생겨서 감정을 혼돈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라는 취지로 답변을 했지.
그럼 왜 우리는 항상 친절하고 긍정적인 상사의 칭찬보다, 매번 버럭하다 한 번씩 듣는 상사의 칭찬이 더 기쁠까?
나는 그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나에게 베푸는 친절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나에게만 친절하다면 그건 특별대우를 받는 느낌이지.
모든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는 바람둥이로 오해받기 십상일뿐더러, 그가 나한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기 어렵잖아. 그런데 다른 여자에게 무뚝뚝한 남자가 나에게만 친절하다면 그 친절함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아지고 나에 대한 호감도 역시 확실히 알 수 있지 않겠어?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가끔씩 맞닥뜨리는 친절이나 예상치 못한 배려에 보다 감동받는 것 같아.
그런데, 얼마 전 <뇌과학 마케팅>이라는 책을 읽다가 무릎을 쳤지 뭐야.
[... 우리는 일단 어떤 것을 경험하고 나면, 그 경험이 어떤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따라서 그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을 사라진다... 자일러의 실험에서 비둘기들은 두 개의 지렛대 중에서 어느 쪽이든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다. 한쪽 지렛대는 비둘기가 누를 때마다 꾸준히 먹이가 나왔다. 다른 쪽 지렛대 역시 먹이를 제공했다. 하지만 열 번 중 다섯 번이나 일곱 번 정도만 먹이가 나왔고 그 간격도 예측할 수 없었다.... 비둘기들은 보상을 예측할 수 없을 때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렛대를 쪼아댔다. 이 결과는 인간을 포함해서 다양한 종을 대상으로 수백 번 재현되었고,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었다.] (출처: 매트 존슨, 프린스 구먼 저. 뇌과학 마케팅, p.245)
다시 말해 보상의 크기나 주기가 일정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지. 이러한 메커니즘 역시 우리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에 기여하지 않을까 싶어. 밋밋한 일상에서 츤츤거리는 사람의 예상치 못한 친절은 뜻밖의 기쁨을 선사할 테니까.
나쁜 남자에게 끌렸다고 해서 우리가 이상하거나 모자란 사람이 아냐. 오히려 인간의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어.
그러나 연애가 아닌 결혼은 새로움이 아니라 안정감이 중요해.
양가 대소사의 조율, 가사와 경제활동, 임신과 출산, 무엇보다 육아 등 둘이 같이 살면서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난관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될 거거든. 츤데레의 드문 친절이 즐겁기보다 그 외 모든 일에서의 츤츤거림이 스트레스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