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고백하자면 나는 눈이 높은 편이야.. 아니, 높은 편이었어. 결혼 전에는 내 친구들도 '내가 눈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했지. 그런데 결혼을 하니까 아무도 안 믿어주더라고. 사내커플로 결혼을 했으니, 직장동료들은 나와 신랑 모두를 알고있거든. 그런 와중에 내가 "저 눈 높아요"라고 말하면, 다들 "아~ 눈이 높아서 그렇게 결혼하신 거군요"라며 장난스레 받아치지...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약간 슬림한 스타일을 좋아하구요, 책을 같이 읽고 저와 토론을 즐기는 남자가 이상형이에요"라는 나의 말이 무색하게 나의 신랑은 네모난 체격에다가, 전문서적 외에 문학작품은 잘 안 보거든. 물론 상식이 풍부하고 아는 것도 많지만, 자기 주장이 강해서 토론을 하다보면 꼰대와 이야기하는 듯한 답답함을 느껴.
아니 그럼 대체 뭘 보고 이 남자랑 결혼했냐고? 직장에서 서로 일하는 모습을 보다보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책임감 있어 보였고, 남들도 잘 도와주는 게 정말 착한 사람으로 보이더라구.(남들을 잘 돕는 오지랖 때문에 가정일이 뒷전이 된다는 건 같이 살아보고서야 알게되었지.)
또 결혼 전에 쓸데없이 보수적이었던 데다 결혼을 일찍한 나는 신랑을 만나기 전 겨우 3번의 연애를 했는데, 모두 동갑 내지는 연하였어. 연애하는 동안 연락을 자주 안 한다고 징징거리거나, 질투로 삐지는 남친들을 보며 '하아~ 남자들은 왜 이렇게 유치하고 어린 거야?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봐야하나?'라는 생각을 했지. 그러다 나이가 너무 많은 신랑을 고르는 바람에 바로 결혼을 하게 된 거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말하던 본인의 이상형과 다른 타입의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이상형에 대해서도 명확한 나침반이 없이 이런저런 기준을 많이 들이대다보면 이것도 애매하고 저것도 애매한, 결국 이상형과 동떨어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해.
나도 '나이는 나보다 많고', '슬림하고', '책 좋아하고', '사람 착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이상형을 정해놓으니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뭔지 모른 채 그 중 몇 가지 조건를 만족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거지.
사람마다 이상형이 다를거야. 그러나 대부분은 한 가지만 보지 않고 나처럼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능력도 있고, 적당히 말도 통하는 사람'을 고르지 않을까?
이것저것 만족하는 사람을 찾으려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딱 한가지를 먼저 정해보자.
그러나 사실 내가 먼저 결혼해 본 언니로서 해주고픈 이야기는 이거야. 만약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된다면 이걸 생각해봐.
"이 관계가 나의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 사랑받고 있다는 건 남자건 여자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서로 굳건하게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 게다가 대화가 잘 통하고 같이 있는 게 즐거운 사람과 함께라는 것은 상대방 뿐 아니라 나의 자존감도 올려줄거야.
만약 상대방과의 관계가 너의 자존감을 깎아먹는다면, 그 관계는 너에게 좋지 않아. 상대방이 아무리 돈이 많고, 잘생기고, 혹은 남들에게 친절한 사람이라 해도 네가 행복한지 들여다보길 바래. 남들이 입을 모아 멋진 사람이라 칭찬해도, 둘의 관계는 남들이 판단할 수 없어. 네가 그 관계에서 마음이 다치고 힘들다면, 남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네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봐줘.
자존감이 낮으면 상대방에게 쉽게 휘둘리고,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지.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내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다음으로 나아가야하는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그 상처에 매달려서 자꾸 들여다보고 건드려보느라 상처가 오히려 덧나기도 해.
그러니 정신이 건강하고 바른 사람이 만나려면, 나부터 스스로 사랑해서 자존감을 높이자.
이 글을 읽고있는 너는 꽤나 괜찮은 사람일 거라 생각해. 요즘처럼 화려한 동영상이 넘쳐나고 문해력을 걱정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을 즐겨읽는 사람일 테니까. 스스로의 평가에 자신이 없다면, 때로는 남들이 네게 주는 긍정적인 평가를 믿어봐. 너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이지.
이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나의 여동생에게 당부하고 싶어.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길.. 그리고 너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 서로의 자존감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연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