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중국어를 배워보겠다고 언어교환 어플에서 대만 여자를 알게 되었어. 한국에서 석사를 하게 되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 대만 아이는 정확히 나랑 띠동갑이었어, 12살 아래. 나보다 12살 어리지만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 경험도 있는 성인이기에 아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그 여자라고 지칭하기는 어색하니 일단 아이라 명명할게.
그 아이가 대학 입학 시기에 맞춰 한국에 입국했을 때는 코로나로 인한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직 엄격히 적용되고 있을 때였어. 그 대만아이는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숙소에서 1주일 격리해야 했지. 나는 밖에 나오지 못하는 그 아이를 위해 쿠팡으로 신선식품과 음식을 좀 보내주었어. 그러자 그 아이가 내게 보낸 메시지.
"Thank you so much, Korean mom"
아니... 12살 차이인데 내가 엄마 뻘이야? 언니라기엔 나이차가 좀 커도, 엄마뻘이라 부르기는 좀 그렇지 않나? 감사인사를 받고도 엉뚱한 포인트에서 나는 왠지 빈정상했어. 그러나 그 아이에게 또 따져 묻을 순 없었어. 나이 차 별로 안 난다고 굳이 굳이 이를 어필하는 꼰대처럼 보이기는 싫으니 말이야. 나이차가 별로 안 난다고 강조하는 게,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처럼 보일까 봐 저어 되기도 했어.
나와 신랑이 결혼할 때 9살의 나이 차를 두고 몇몇 사람이 "세대 차이 안 느껴요?"라고 물었어. 그땐 생각했지. '9살 차이에 무슨 세대차야? 좀 오버 아냐?'
그런데 있더라, 9살 차이에도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 세! 대! 차! 이!
정확히 말하면 나이 차이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해.
신랑은 엄격한 집에서 보수적으로 자란 편이라, 요즘 같은 시대에도 '장남'에 부여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자란 신랑은 내 아들에게도 "우리 종손"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해. 외아들, 외동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아직도 장남, 장손 타령이라니, 결혼과 동시에 과거로 회귀한 것 같은 이 느낌 뭐지...
또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잖아. 대개는 성격이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니, 가치관이 더욱 확고해지기 마련이지. 게다가 신랑은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상사나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과 어울리니 주위에 나이 많은 개꼰대 아저씨들이 가득했어. 물론 내가 보는 개꼰대들이 신랑 눈에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신랑이 내게 가진 불만 중에 하나는 '내가 시부모님에게 잘하지 않는다'는 거였어.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본인 부모에 대한 효도'라니... '효도는 셀프인 시대에, 이게 웬 시대착오적인 꼰대 마인드인가' 싶어 정말 고구마 먹은 듯 답답했어. 게다가 내가 정말 시부모님에게 못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아. 신랑이 난리 치니 매번 명절이면 이틀 전에 시가에 가서 음식 준비 돕고, 은퇴 후 농사일 시작한 시부모님 덕분에 모내기, 추수 때마다 음식도 준비해 가지.
그런데 신랑이 내게 바라는 효도는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하는 것'만큼 시부모님에게 해주는 거였어. 내가 가이드처럼 계획을 다 짜서 우리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갈 때 신랑에게는 굳이 같이 가자고 권하지 않아. 신랑이 불편할까 봐 말이지.
"다음 달에 엄마 모시고 여행 갈 건데 아이도 데려갈 거야. 당신은 바쁘면 같이 갈 필요 없고, 혹시 놀러 가고 싶으면 같이 가도 돼"
"당신은 장모님 모시고는 그렇게 여행 다니면서, 왜 시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자고 안 해?"
"당신도 여행계획 짜서 시부모님 모시고 다녀와. 챙기기 힘들면 아이는 안 데려가도 되고. 나는 시간 되면 같이 가는 거고, 안 되면 못 가는 거지. 되도록 같이 가겠지만 일정 잡고 계획 짜는 건 당신이 해야지"
주도적인 역할은 자식이 하는 거고, 며느리나 사위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함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신랑은 그게 서운한가 봐.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하듯이, 가이드처럼 여행 계획을 다 짜서 쨘~!! 하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주기를 바라더라고. 결국 본인이 해야 할 효도를 배우자에게 미룬다고 생각이 되니 자꾸 갈등이 생기는데, 이 가치관의 차이는 대화로 좁혀지기가 힘들어.
같은 시대를 공유한다는 것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질 확률이 크다는 거야. 30년대를 살았던 우리의 할머니들은 아들을 낳는 게 중요한 문제였고, 50년대를 살았던 우리의 엄마들은 집안과 남자형제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 당연했지. 라떼의 80년대 김지영들은 남자와 동등하게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듣고 자랐어.
그런데 그 시대에 당연했던 가치관이 9살 차이에도 미묘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고, 그 차이로 인해 매일 사소한 문제에 부딪치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야. 그래서 누군가 나이 차이 많은 사람과의 결혼에 대해 의견을 구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나이 차가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를 보라고! 그리고 반드시는 아니지만, 나이 차가 크다면 가치관이 다를 확률이 크다는 것도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