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과학을 발전시킨 이유
“이번 상반기 실적이 왜 이래 다들 정신 빠졌어?”
회의장은 루시퍼 부장의 고함으로 가득 찼다. 모든 사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지난 주 들어온 신입, 말똥말똥 눈을 굴리며 주위를 살피는 귀여운 막내 한 명만 빼고.
“선배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 괴롭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요? 선배 때랑 완전 달라요. ”
“이럴 때 일수록 창의적인 돌파구를 찾아야지. 구멍은 있는 법, 이렇게 인간들 행복하게 나둘래? 너네 때문에 악마산업이 비전 없단 소리 듣는 거 아니야. ”
사실 루부장도 악마산업이 예전만치 못하다는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그래도 후배들의 태도는 답답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힘을 내어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신입사원도 채용된 지금, 깜찍한 막내에게 회색 빛 미래가 아닌, 악마산업의 찬란한 앞날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한다. 막내 한 명만 데리고 지구로 내려갈테니, 다들 똑똑히 보라고!”
홧김에 루부장은 자신이 직접 인간 사회에 내려가겠다고 선언했다.
루 부장은 악마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였다. 최단기 200년 만에 부장으로 특급 승진 한 전설의 주인공이었다. 인간세상으로 내려가는 구름 속에서 루부장은 신입에게 자신의 업적을 거들먹 댔다.
“그때 인터넷 생긴다고 인간 세상 편해져서 악마 망하는 거 아니냐고 난리도 아니었어. 근데 난 빈틈을 찾았지. 내가 주목 한 건 ‘기다림’. 기다림의 빈틈 이었어. 악마 임원 모두가 인간을 짜증나게 하기 위해선 인터넷을 망가뜨려, 더 기다리게 해야 한다고 했지만 내가 말했지. 속도는 더 빨라져야 한다고. 사람들이 진짜 짜증나는 건 기다림이 아니라고. 나만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놀이동산에 매직 패스를 만든 것도, 3G 4G 5G 기술을 이끈 것도 전부 그의 활약이었다. 누릴 사람만 누리게 하기 위한. 인류를 향한 축복 같아 보이는 저주. 그의 전략은 인간들에게 먹혀 들었다.
“뭐 시시한 것도 많이 했어. 장기 기증 이식 순서, 수술 순서도 바꾸고. 근데 악마도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기술을 사용해야 하지 않겠니. 허허허. ”
막내는 루부장의 무용담에 홀딱 빠져들었다. 자신도 루부장을 본받아 시대에 맞게, 창의적으로 인간을 괴롭히겠다는 큰 포부를 품었다.
“루 부장님 한국은 이 곳으로 가면 될 거 같은 데요.”
막내와 루부장이 도착한 곳은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였다. 끝없이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며 루시퍼는 희열을 느꼈다. 잠시, 근처에도 카페가 있는데 왜 유독 여기만 줄이 길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오직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괴롭힐 방법에만 온 신경이 쓰였다.
“막내야, 우리는 우리 대신 기다려주는 사람을 고용하고, 편히 쉬다가 이 줄 앞에서 커피를 받아가자. 그러면 이 줄의 기다리는 사람들은 엄청 짜증나겠지?”
분위기를 살피며 작업을 시작해보려는 순간, 어디선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악마를 닮은 인간이 먼저 자신의 방법을 써먹은 것 인가. 시작도 전에 벌써 성공인 것인가, 루부장은 고개를 돌려 줄을 살폈다. 하지만 짜증의 소리는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진짜 불공평하다. 뭐야 인생. 부럽다 부러워. 나도 기다리고 싶다. 누구는 커피 하나 마시겠다고 저렇게 몇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있다. 지금 블루보틀 한 잔이 부러운 게 아니야. 요즘 시대 가장 비싼 사치는 기다림 아니야? 가진 놈들이나 기다리지. 난 편의점 커피로 카페인 수혈하고 일하러 가야지 뭐. 나도 한량 같이 몇 시간씩 기다려 보고 싶다.”
“루부장님,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요? 이게 맞나요?”
막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루부장을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루부장은 혼란스러웠다. 호언장담하며 내려왔는데,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자신도 이제 시대를 못 읽는 아재가 되어 버린 건가. 아무리 세대가 변해도 기다림이 부러울 수 있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 잠깐만,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지? 기다리는 게 행복이라는 거지? 기다리지 못해서 기다릴수가 없어서 괴롭다는 거지? 대체 뭐니 요즘 애들? 요즘 인간 애들 대체 어떻게 사는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