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9
얼마되지 않는 길이의 우리집 담벼락 너머를 보면 다세대 주택이 보인다. 높이는 우리집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으면서 재료는 붉은 벽돌을 사용한 집. 두 집만 놓고 보면 꽤 잘어울린다. 그러나 나름 이웃인데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 중 할머니 한 분에 대해서는 조금 알게 되었다. 바로 오늘.
우리집 담벼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전봇대가 하나 서있다. 그 밑에는 담벼락이 꺾인 곳과 전봇대의 아래 부분을 꼭지점 삼아만든 시멘트 화단이 있다. 이사오기 전부터 만들어져 있어서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른다. 처음 이사 왔을 때, 화단에는 심은 것인지 멋대로 자라난 것인지 모를 잡목이 있었다. 화단을 만든 사람은 진즉에 이사를 가고 안계신 것 같았다. 옆 집 사람들은 잡목이 차지하고 남는 화단의 공간을 쓰레기 두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화단 옆의 멀쩡한 공터를 두고 굳이 화단에 쓰레기를 올려놓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자라던 잡목도 시들어버렸다. 바로 그 곳에 아빠는 나무를 심으시려고 하셨다. 엄마와 함께 꽃시장에 다녀오신 아빠는 그 곳에 심을 묘목을 사오셨다. 사과나무였는지 벚나무였는지 헷갈리지만 크지않은 묘목이었다. 아빠는 강한 생명력으로 깊숙이 뿌리내린 잡목을 파내신 뒤 그 곳에 묘목을 심으셨다. 쓰레기가 보이던 전봇대 풍경이 자라날 나무로 달라져 보였다. 우리집에서 잘 보이려면 몇년은 더 자라나야 할테지만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은지 채 하루도 안된 오늘. 옆집의 할머니께서 왜 이런걸 맘데로 심냐며 당장 뽑으라고 노발대발 성질을 내셨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빠께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평소 부당함에 잘 맞서시는 아빠의 모습을 알고 있는 나는 당연히 아빠께서 한마디 하실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아빠는 순순히 나무를 다시 파내시고 담벼락 안쪽에 갖다 놓으셨다. 아빠께 왜 그냥 뽑으셨냐고 여쭸다. 아빠는 엄마가 아프셔서 저런 사람들에게 대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하셨다. 평소 당당하고 곧은 모습을 보이시던 아빠의 얼굴에는 대응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피곤한 이 상황이 당신께도 스트레스라는 듯한 표정이 보였다. 그런 표정으로 말씀하시는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마 아빠께서도 그렇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화가 나실 것이다. 나는 나라도 대응하려고 이리저리 방법을 찾았으나 마땅한게 없었다. 우린 그렇게 함께 무기력했다. 마치 뽑혀버린 묘목처럼.
엄마의 아픔이 이런 상황에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요즘은 매일이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