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희망의 불필요성에 대해

미드나잇 가스펠 ep.5를 보고

by 김던

어제 자기 전에 미드나잇 가스펠을 봤는데 의도찮게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미드나잇 가스펠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팟캐스트 비슷한 걸 제작하는 주인공이 가상세계에서 만난 인물을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인터뷰는 실제 인물과 진행하기 때문에 현실과 경계가 흐린 점이 특이하다.

에피소드 5, “실존적 두려움”에서는 제이슨 루브라는 작가와 인터뷰한다. 이 작품 안에서 루브는 죽음과 환생을 반복하는 인물 ‘밥’의 소울 버드로 그 과정을 함께 한다. 밥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동안 루브와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인터뷰에서 루브는 불교와 힌두교 등의 믿음을 설명하며 그들이 그리는 진리를 보여준다. 그걸 내 마음대로 세 가지로 나누자면, 모든 것의 실체 없음, 살아있음의 본질적 고통, 그리고 감정의 무의미함이 주요하다.


1. 모든 것의 실체 없음

우리가 보고 만지고 끌어안고 사는 것들은 사실 실체가 없다. 돈이든 자리든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우리가 각자 나눠진 독립된 객체라는 생각도 그렇다. 루브는 그걸 빛나는 비어있음(nothingness but shining)이라 표현한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고 짧은 시간 후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그걸 완전한 무의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루브는 인드라의 그물과 비교한다. 우리는 존재 이전에 원자들이나 다른 차원의 무언가였지만 시간에 묶인 3차원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의식과 자아를 갖게 되자 그걸 우리 자신이라고 믿게 됐다. 인드라의 그물에 연결고리가 생겨나 거기에 의식이 생기는 거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든 의식이 연결된 커다란 그물의 한 지점일 뿐이다. 그걸 삶 속에서 잊을 뿐.

더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는, 우리가 바닷속에 오래 잠수하려면 스노클이 필요하듯 이 삶 속에서 존재하려면 자아가 필요했던 건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스노클이라고 믿어버린 거다.

여기서 불교와 다른 종교 간의 차이가 보인다. 다른 종교들은 대부분 어디로 다다르려고 하거나 어떤 점수를 얻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불교는 그 모든 게 의미 없다고 말한다. 루브는 그게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열을 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현실이 가상이라는 이야기다. 가상의 게임에 몰입해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 물 좀 마시라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2. 살아있음의 본질적 고통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몸을 유지하는 건 괴롭고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국 전부 사라진다. 어떤 숭고한 가치도, 영원히 기억될 것 같은 업적도, 아름다움과 역사도 전부 사라질 거다. 우주의 역사 속에 인간이 존재할 시간은 섬광과 같다. 이런 일시적임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에 고통받는다. 자아가 고통의 근원이다. 그래서 자아, 개인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3. 감정의 무의미함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에 느껴지는 본질적 고통에서 우리는 도망치려고 한다. 그 감정과 마주 앉는 게 불교의 명상이라고 루브는 설명한다. 감정은 시시때때로 모양이 변화하지만 중심은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든 것 안에서 개인의 삶이란 건 백일몽과 같으며 비어있고 유한하다. 그것과 마주하면 어느새 그 꿈에서 깨어나 그게 꿈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게 다르마의 첫 번째 전환이다.

그렇기에 희망 또한 의미가 없다. 존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희망은 필요성을 잃는다. 현재가 그제야 괜찮게 느껴지는 거다. 그리고 사실 희망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괴롭힌다. 그런 희망, 기대를 놓아주고 현실의 무의미함을 받아들이자는 게 요지다.


아까 이야기했던 계속해서 죽고 다시 살아나는 밥은 그런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시간으로 묶여있는 세상 바깥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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