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음의 의미
지구부터 시작해서 행성으로, 행성에서 은하로, 결국에는 수많은 우주들로 연결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 속 지구는 한낱 먼지보다 작았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그 먼지보다 작다. 세상을 잠시 스쳐가는 그 먼지 조각보다 한참 더 짧은 생을 사니 무엇을 이루더라도 결국에는 잊힐 운명이다. 이걸 깨달았을 때 슬퍼지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도 있다. 어렸을 때는 그 막연함이 두렵고 무서웠지만 이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커다란 고통도, 빈자리가 주는 긴 외로움도 실제는 없다. 우리가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쏟아부어가며 이루려는 것들도 결국에는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암울한 이야기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사는 것들이 먼지만도 못하다는 뜻이니까. 그렇지만 이 사실은 의미를 본인이 상정할 수 있게 한다. 거대해 보이는 가치와 목표들의 실체는 초라하니 본인이 원하는 곳에 마음을 둬야 한다. 숭고하게 칠해지는 부와 명예를 비롯한 사회적 성공을 끊임없이 쫒는 자세 또한 그렇다. 우리는 종종 생산성에 매달려 무엇도 이뤄내지 않는 시간을 하찮게 여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눈에 보이는 금전적 결과를 이뤄내거나 그것과 이어져야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샌가 모든 일이 생산성에 의해 평가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카루스는 황소와 사람이 섞인 괴물인 미노타우르스를 가둔 미로를 만든 건축가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이 둘은 그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혔다가 다이달로스가 밀랍과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탈출한다. 하늘을 날던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아올라 밀랍이 녹는 탓에 추락한다. 이런 이카루스의 죽음은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회자된다. 나도 그렇게 기억하다 인터넷에서 이 글귀를 보았다.
"Oh, Icarus!
For all you have fallen, still you flew!
And for a moment, the sun knew of you, too."
"오, 이카루스!
그대가 추락한 만큼 그대는 날아올랐으니
한 순간 태양도 그대를 알았다."
"침몰하고 쓰러질 때도 웃는 이들이 있으니 우리가 무엇이라고 비극을 규정하나"라는 사족과 함께 쓰여있던 이 글귀는 나로 하여금 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했다. 나는 유치원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글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고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즐거웠는데 가면 갈수록 부담감이 늘었다. 글을 사랑하지만 글을 쓰는 일이 괴로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긴 글은 쓸 수 없었다.
이제 내 글이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다 해도, 어떤 성과도 가져오지 못한다고 해도 내 글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는 걸 안다.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면 무엇이 의미 있을지는 내가 정할 수 있고 비극처럼 보이는 끝도 내가 판단하기 나름이 된다. 이런 찰나의 섬광 같은 삶 속에서 내가 가치를 두기로 한 것은 글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가치를 두다 보면 그 끝이 아무리 허무해도 당장을 살아가며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