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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Aug 25. 2024

나의 언어

독일어는 논리적인 언어이다. 영어처럼 예외가 많지 않고 한 문장을 말할 때 다양한 표현법이 존재한다. 쉬운 문장도 어렵게 말할 수 있고, 어려운 문장도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다. 단어의 양도 다른 언어의 비해서 많다. 동사도 물론 많다. 이 말은 독일어가 굉장히 세심하고 섬세한 언어라는 뜻이다. 영어처럼 말투에서 계급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말하는 단어나 동사 표현법을 듣거나 볼 때 그 사람의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까다로운 언어를 처음 배울 때 너무 재밌었다. 언어의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독일어는 영어보다 나와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의 온통 관심사는 독일어였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이거는 독일어로 뭐라고 말하지? 이 물건은 독일어로 뭐라고 부를까? 지나가는 독일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중 그날 배운 단어가 들리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독일어로 일기도 쓰려고 했었고, 독일어로 된 어린 왕자 책을 읽으려고 했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독일어 자막으로 보기도 했었다. 이렇게 1년 내내 다른 고민하지 않고 독일어만 생각하니 내 독일어 실력이 늘게 되었다. 그럼에도 독일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준은 아니었다. 같은 어학원에 있는 외국 친구들과 독일어로 이야기하는 수준이었지만 다른 나라 언어로 다른 나라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보람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독일어가 스트레스가 된 것은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다. 독일 사람들과 직접 소통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독일어로 수업에 참여해야 했는데 갑자기 벙어리,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독일어로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느새 나에게 독일어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어학원을 다닐 때는 독일어가 너무 재미있고 하루종일 독일어 생각만 했었는데, 한 순간에 독일어 공포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학교에 가서도 독일 학우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었고, 의무적인 수업만 참여하게 되었다. 학교만 가면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 자존감도 점점 낮아졌다.


나의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한인 식당에서 서빙알바를 하고부터였다. 독일어의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고, 주문받는 것이 전부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일을 시작하고 독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사라졌다. 손님들이 친절했고, 주문을 할 때 메뉴를 한국어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나의 독일어도 자연스레 늘게 되었다. 한인 식당이었지만 대부분의 손님이 독일 사람이었고, 주문을 받을 때 이것저것 물어보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처음에는 물론 당황했지만 물어보는 질문들이 정해져 있다 보니 오늘 보다 내일 더 잘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손님들과 더 많은 얘기도 하게 되었고, 돌발적인 질문이 와도 능숙하게 대처할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학교 졸업 후 독일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나의 독일어의 다시 한번 큰 고비가 왔다. 단순한 스몰 토크나 일상생활 독일어만 익숙했던 나에게 실제 업무에 필요한 독일어를 할 상황이 되었고, 8시간 내내 독일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했으니, 독일어가 다시 큰 산처럼 느껴졌다. 동료들은 나를 배려해서 업무 지시도 항상 글로 써주고, 두세 번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좀처럼 늘지 않은 독일어가 나의 회사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처음 3개월은 독일어 스트레스에 잠도 잘 못 자고 회사에 가기 두려웠다. 이런 두려움이 조금씩 회복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새로운 동료가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였다. 나와 같은 팀이어서 함께 일할 일이 많았는데, 그 친구가 독일 사람들도 손사래칠 정도의 투머치 수다꾼이었던 것이다. 첫날부터 엄청난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날 퇴근 후 나는 귀가 멍해 지쳐서 바로 침대에 쓰려졌다. '저 친구와 앞으로 일을 해야 한다니, 나와 같은 방인데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크게 반응하지 않고, 그 동료의 말에 '그러니?'라고 대답한 해도 일하는 내내 수다를 떠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반절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동료는 내가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매일 그 동료의 수다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독일어가 무섭지 않게 되었다. 신기하게 나도 그 동료에게 조금씩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닌데, 상대방이 그렇게 나한테 얘기하니, 나도 얘기를 해야 되나?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 오고 회사에 있을 때 동료들과 대화나 회의 중 툭툭 독일어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특히 업무 관련해서는 한국어보다 독일어 단어가 더 익숙했기에, 그 독일어에 맞는 한국어를 찾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모국어로 일하니 이렇게 편할 수 없었다. 독일에 오랜 시간 살아왔는데도, 모국어로 회사 생활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지... 독일에서 한국으로 환경이 바뀌고,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언어였다. 한국 사람들도, 독일 사람들도, 한국 풍경도, 독일 풍경도 아닌 내 몸과도 같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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