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간 뒤로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지금 어디 있는지 이런 생각이 들 때 할 수 있는 일이 하늘을 보는 것뿐이었다. 복잡한 대도시인 서울에서 지내다 독일에 오니 시야가 트였다.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 건물이 없고, 도로가 넓으니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는 상황이 생기지 않았다. 처음에 독일에서 독일어 배우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 공원에 자주가게 되었고 자연스레 공원에 눕는 날이 많아졌다. 하늘을 보면 마음이 놓이고 행복했다. 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했다. 단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뿐인데,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어학원을 다닐 때 가톨릭 기숙사에 살았다. 기숙사에 작은 옥상이 있었는데,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던 친구들과 밤에 자주 올라가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하늘에 별이 많이 보였는데, 별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이런저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했던 일이 가끔 생각이 난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독일어 시험이 끝난 뒤,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겨울에 걸은 적이 있다. 하루는 아침 길을 떠날 때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오후에 그치기 시작하더니 언제 눈이 왔냐는 듯이 쨍한 햇빛이 뜬 날이었다. 그날 묵은 숙소 앞에 넓은 들판이 있었다. 같이 걸었던 친구와 저녁을 먹고 들판에 잠시 나갔다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별이 쏟아진다는 말이 이런 얘기였구나, 라며 실감한 날이었다. 별이 너무 많아 하늘이 검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날 본 별 하늘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해서 하늘에 있는 별을 볼 때면 그 하늘이 자꾸 생각난다.
독일에서 남편과 트래킹을 자주 했다. 한번 가면 최소 3일 정도는 숲 속 길을 걸었는데, 걸으면서 중간중간 묵게 되는 숙소들이 시골에 있거나 숲 속 한가운데에 있었다. 불 꺼진 밤 가로등도 꺼진 밤에 남편과 별을 보기 위해 나간 적이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이 조금씩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계속 보니 별이 우리 눈에 더 들어왔다. 별은 처음에 자기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우리가 오래 지켜보면 서서히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별이 점점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을 지켜보다 엄청난 감동이 밀려와 가슴이 벅찬 적이 있다. 우리가 독일에서 살던 곳은 작은 도시여서 상대적으로 대도시보다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그 가슴 벅찬 경험을 한 후로 우리는 밤에 별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별 헤는 밤은 참으로 아름답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되었다. 남편과 나 둘 다 많이 바빴다. 서울에 살면서 높은 빌딩,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 눈을 둘 곳이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빌딩이 보이거나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하늘을 보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도 없어졌다. 한국에 온 뒤로 처음 여름휴가를 떠났다. 강원도 산속으로 휴가를 왔는데, 독일에서 알프스로 휴가를 간 기분이 들었다. 산이 있고, 계곡이 흐르고 어디를 보나 초록색이 보인다. 하늘은 맑았다. 하루는 산책을 하며 별을 보기 위해 하늘을 보았다. 가로등 빛이 많아 별을 보기 쉽지 않았지만 최대한 빛이 없는 곳으로 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하나둘씩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별을 보는 순간 독일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리웠던 건 사실 독일이 아니라 독일에서 일상으로 느꼈던 아름다운 자연이 아닐까 싶었다.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나무가 있고, 별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