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지냈을 때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 서양은 말을 하는 문화이기에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이웃들은 기본이고, 자주 가는 가게의 주인, 기차에서 옆에 앉은 사람, 친구의 지인들까지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물론 내가 먼저 말을 건네는 경우는 드물다. 먼저 말을 걸어오면 나는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만 한다.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안 와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물어본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만 해주고 내가 더 이상 묻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것은 서양에서는 예의가 아니었다. 사실 내가 질문을 한다고 해도 다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섣불리 대화를 시작하기 어렸웠던 것도 있었다.
독일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일을 하며 매일 동료들을 만나니 독일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TMI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언뜻 보면 자기 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시작이었다. 상대방에게 나를 오픈한다는 것은 나 역시 상대방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민감한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내가 상대방의 생각과 같지 않더라도 나의 생각을 솔직히 얘기해 주는 것이 대화를 깊게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굉장히 다양했다. 독일에서는 이렇게 대화를 해야 하는구나,라고 느낄 때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다.
독일에 있었을 때 2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방문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면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사는 세상이 다르니 대화 주제의 관심사가 달랐다. 나는 여전히 학생이었고, 친구들은 직장인이었다. 내가 직장인이었을 때는 그들은 결혼, 육아를 하고 있었다. 각자 고민하는 부분이 달랐다.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면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만나는 친구들은 다 달랐지만 대화의 주제는 항상 동일했다는 것이다. 나잇대가 비슷해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하는 고민들이 다 똑같다니... 누구를 만나든 같은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국에 사는 지금, 반대로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만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국에서 다시 사는 나의 삶이 어떤지 궁금해했다. 적응하기는 쉬운지, 다시 외국으로 나가고 싶은지 물었다. 대답을 하며 문득 내가 한국에서 힘들어하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할 때면 거부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부동산 아니면 주식 얘기였다. 내가 그쪽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를 만나든 그 주제가 빠지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한참 뒤처져 있는 것 같아 우울해진 적도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지 않아 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모국어로 내가 독일에서 보다 더 편하고 풍성하게 대화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없다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한 친구 역시 나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한국에서 만나는 친구들마다 부동산, 주식 얘기만 한다며, 이런 주제로 외국에서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놀랐다고 했다. 지금 나는 우리나라에서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독일에 처음 갔을 때처럼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