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 일상이 너무 고요해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던 적이 있다. 나만 정체돼있는 것 같았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나의 일상이 무서웠다.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일상에 벗어나려 발악이라도 하듯이 변화를 시도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직장을 그만둘 때가 됐을 때 그 변화가 너무 무서워서, 일상이 달라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나의 결정을 다시 되돌리고 싶기도 했다. 나의 일상의 변화가 온다는 것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떻게 하지? 예전보다 나의 일상이 불행해지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로 내가 만든 변화에 허덕이게 되었다. 한국에서 독일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직장에 들어갔을 때도 모두 다 내가 그렇게 원하고 희망했던 일이 일어났는데도 기쁨은 잠시였고, 더 큰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한국에 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라인데, 그 먼 외국땅에서도 잘 해냈는데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걱정 없이 다 잘 받아들이고 잘 해내갈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독일에서와 똑같이 어떤 변화가 나에게 일어날 때, 내가 그 변화를 만들어 냈을 때 막상 그 일이 내게 다가오면 두렵고 나 자신이 작아진다. 계속해서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아니고, 타인에게 나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한때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다. 나는 사실 자존감이 아주 낮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억지로 찾은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자존감이 낮아서 생기는 것이라 한다면 그 두려움은 오직 부정적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남편이 나에게 나는 참 멋진 사람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변화에 두려워하지만 언제나 성장하기 위해 도전을 시도한다며, 힘들어도 해내려고 하는 모습이 멋지다라고 했었다.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나에게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자기도 그렇다며, 변화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막상 그 변화가 생길 때는 두렵다고 했다.
나의 일상이 또 한 번 변할 것이다.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 낸 변화이다. 두렵지만 그 두려운 마음을 긍정한 채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 새로운 일상이 언젠가는 다시 고요해지고 지루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반복되는 일상과 변화가 나의 생에 계속될 것이다. 그 일상과 변화는 나에게 언제나 처음 일어나는 일처럼 낯설것이다. 이 두려움과 낯섦을 성장통이라 생각하며 그저 견뎌낼 수밖에, 시간이 흘러 다시 일상을 되찾기를 바랄 수밖에...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 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 드라마 <연애시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