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가들의 뮤즈, 케이트 모스

by 브레첼리나

순수 예술 사진을 전공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공부는 수많은 사진 작가들의 작품집을 보는 일이었다. 매일 도서관에 가서 시대별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사진집을 들여다보았다. 독특하다 못해 기괴한 사진들도 많았다. 멋진 풍경 사진도, 테크닉이 화려한 사진도 아니었다. 예술가마다 스타일은 전혀 달랐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진 자체보다는, 예술가들이 단지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들의 예술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도통 느껴지지 않았고, 사진은 재미도 없었으며 나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예술 사진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꼭 봐야 할 패션 사진’이라는 사진집을 우연히 발견했다. 별 기대 없이 집어 든 그 책이 나를 다시 사진의 세계로 이끌었다. 90년대 흑백 패션 사진이 주를 이루던 사진집이었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어느새 구도, 명암, 대조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업 사진이었지만, 정형화된 느낌보다는 사진 작가마다의 고유한 스타일이 또렷하게 보였다. 몇몇 사진은 단순한 패션 사진이 아니라 예술 사진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어 보였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들과 모델이 있었는데, 바로 케이트 모스를 찍은 사진들이었다. 수많은 모델의 사진들이 있었고, 몇몇 모델은 자주 등장했지만 케이트 모스의 사진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쉽게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사진에서도 그녀가 나타나자, 나는 바로 그녀임을 알아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삐쩍 마른 몸이었다. 당시 사진 속에는 글래머러스한 모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진한 화장, 풍성한 머리, 풍만한 가슴,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 멋진 배경 안에서 모델은 그저 예쁜 피사체처럼 놓여 있었다. 그런데 케이트 모스의 사진은 달랐다. 자연스러운 얼굴, 일상적인 포즈, 비교적 수수한 옷, 단순한 배경 속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맨 얼굴의 주근깨마저 멋져 보였다. 인형처럼 보이던 다른 모델들과 달리, 사진 속의 그녀는 살아있는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녀가 사진을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사진은 고요하지만 강렬한 생동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패션 사진을 찍어본 적은 없지만, 사진 작가들이 그녀에게서 얼마나 큰 영감을 받았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카메라를 들 때 가장 고민했던 건 ‘무엇을 찍을까?’였다. 당시 사람을 찍는다는 건 무섭고 자신이 없었다. 살아 있는, 움직이는 대상을 찍는다는 건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대상 앞에서, 내가 무엇을 찍고 싶은지, 사람을 얼마나 통제해야 하는지, 포즈나 표정, 입을 옷까지 모두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들을 찍었다. 자연 풍경, 도시의 거리, 건물들. 사람이 등장하지 않을 때는 사진이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지만, 우연히 사진 안에 사람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그 순간 사진은 전혀 다른 느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을 찍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사진을 보고 나니, 그녀를 찍은 사진 작가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녀를 바라볼 때 이미 머릿속에 완성된 그림이 그려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멋진 풍경이나 매력적인 거리를 보면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 드는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다. 당시 다른 모델들과는 달랐던,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당히 보여주는 그녀가 참 멋있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대상이 점점 깊게 보인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진 속의 모델이 아무리 당당해 보이려 해도, 때론 얼마나 불안해하는지가 고스란히 보인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배우가 얼마나 그 배역에 몰입했는지, 어떻게 자기만의 해석으로 연기하고 있는지가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케이트 모스의 사진을 보면,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진실되게 서 있었는지가 보인다. 적어도 셔터가 눌리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자기 일을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지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외면을 담지만, 어쩌면 그 어떤 것보다 내면을 더 잘 보여주는 매체라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Kate Moss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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