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은 내게 중요하고 잊을 수 없는 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으며, 공식적으로 성인이 된 첫 해였으니까. 처음으로 연애를 했고, 그전까지는 머릿속으로만 막연히 상상해 오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게 실제로 다가오고, 또 떠나간 해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연히, 교회 집사님 댁에서 교회 언니, 오빠들과 함께 지금도 잊지 못하는 드라마, <연애시대>를 처음 만났다. 드라마의 첫 장면. 호텔 레스토랑에서 손예진과 감우성이 스테이크를 먹으며 툭툭 거리는 대화를 나누는 그 장면이 당시 갓 성인이 된 내게는 무척 어른스러워 보였다. 서로 속마음을 감추려 애쓰는 듯 무심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 하지만 조금만 건드리면 모든 진실이 터져버릴 것 같은, 어딘가 위태로운 그들의 관계가 궁금해져서, 그렇게 나는 <연애시대>를 보기 시작했다.
<연애시대>는 남녀 주인공, 여주인공의 여동생, 남주인공의 절친한 친구. 이렇게 네 사람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과하게 슬프지도, 인위적으로 아름답지도 않았다. 시청자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려하지 않고, 일상 속 소소한 유머와 어색한 순간들도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내는 점이 참 좋았다. 그 네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생각지도 못한 관심을 받게 될 때,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사소한 행동에 상처받을 때, 또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괜히 마음이 설렐 때. 내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들, 내 안의 감정과 생각들, 후회와 미련들이 어느새 그 네 사람을 통해 내게 다가왔다. 성인이 된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살게 되었고, 다양한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쌓았으며,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짝사랑이 아닌 서로를 사랑하는 첫 연애를 했다. 낯설고 복잡했던 내 감정들은 <연애시대> 속 네 사람을 통해 이해받는 듯했고, 나 또한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독백이 많다. 주인공들의 일상적 감정, 타인에 대한 생각, 조용히 찾아오는 깨달음들이 그 독백을 통해 전해진다. 바로 그 독백이, 시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가장 큰 힘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이 마음속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털어놓으며 시청자를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연애시대>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한다. 왜냐하면, 말하는 순간 누군가는 상처받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그렇다. 다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감정을 꾹 눌러 담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끼칠 크고 작은 영향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회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특별한 관계가 아닌 이상, 우리는 더더욱 자신을 감춘다. 나의 첫 연애는 불이 금방 타오른 것처럼 시작되었고, 금세 꺼져버렸다. 설렘이 미움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별 후, 내게 남은 것은 못난 내 모습이었다. 헤어진 그 사람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와 그는 예전과 지금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우리의 '관계'가 변하니 그 속에서 나와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평범한 안부 인사조차 나눌 수 없었고, 멀리서 그를 보면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사랑이 끝나자 관계가 바뀌었고, 그 안에서 내 감정은 더더욱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미련이 남았다기보다, 그저 '미안했다'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그 경험을 하고 나서야, 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기를 그렇게 주저할 수밖에 없었는지,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내게 <연애시대>는 여러 번 계속되었다. 내 일상이 지겹게 느껴질 때, 누군가를 좋아하고 상처받았을 때,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다시 찾았다. 그럴 때마다 내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새롭게 느끼는 낯선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 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를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닮아하면서, 무엇보다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 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