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와 커피

by 브레첼리나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시절, 한 학기 동안 밀라노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다. 이탈리아는 내가 자주 여행하던, 낯설지 않은 나라였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나라 중 하나였기에 큰 기대와 설렘을 안고 밀라노에서의 짧은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일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짧은 거주였기에 집을 구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다행히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단기 방을 구했지만, 문제는 단기여서 몇 달 치 월세를 한 번에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가난한 유학생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그래도 교환학생을 신청할 수 있었던 건 일정 부분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장학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독일에서 소소하게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은 단번에 월세로 나가버렸고, 나는 장학금이 하루빨리 들어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장학금은 생각보다 훨씬 늦게 지급되었다. 독일의 느린 행정은 익숙했지만, 그보다 3배는 느린 이탈리아와 함께 진행하는 서류처리는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 “내일은 들어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기에 밀라노에서의 삶은 즐기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일하게 매일 즐긴 작은 사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 카페에 가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탈리아의 커피값은 저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Bar에서 서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렇게 하면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 한 잔에 1유로에서 1.30유로 정도면 충분했다. 좀 더 크고 모던한 카페에서 앉아서 마시면 1~2유로를 추가하면 됐다. 한국이나 독일에 비하면 여전히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1일 1 카페’라는 사치를 선택했다. 커피는 정말 너무나도 맛있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커피는 잠을 깨기 위한 도구였지만, 밀라노에서 커피는 그 자체로 ‘기쁨’이었다. 커피 맛에 진심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동네 Bar부터 시작했다. 집 근처, 아침마다 현지인들로 붐비는 Bar에서 가볍게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약간 넣은 커피를 마셨다. 현지인들처럼 설탕을 넣어 마셔보니, 커피의 향과 맛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자주 마시다 보니 흰 설탕보다 갈색 설탕이 커피와 더 잘 어울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 잔을 마시고 학교로 향하곤 했다. 학교 근처는 예술 구역이라 예쁘고 감각적인 카페들이 많았다. 그곳에서는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을 하며 카푸치노를 마셨다. 커피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커피, 우유, 양, 온도—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영감이 내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매일 다른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커피가 별로인 곳에 가면 괜스레 화가 나기도 했다. 어느새 입맛이 길들여졌는지 자주 가는 카페가 생겼고, 익숙한 바텐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반가웠고, 밀라노에서 거주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밀라노에서의 짧은 삶은 매일의 커피와 함께했다. 독일로 돌아온 후, 독일의 커피가 왜 그렇게 쓰고 밋밋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유명하다는 카페를 가도 밀라노에서의 그 커피 맛을 느낄 수 없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맛있는 커피는 많았지만, 그때 밀라노에서 마셨던 그 한 잔의 맛을 떠올리게 하진 못했다. 어쩌면 커피의 맛보다도, 당시의 가난한 상황에서 누렸던 작고 소중한 사치가 커피를 더 특별하게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지금도 밀라노의 한 카페에서 마셨던 그 카푸치노 한 잔이 여전히 너무나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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