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초반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적은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굶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금방 배가 고파지고 마음의 여유도 사라지면, 자신감마저 괜스레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준 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따뜻한 음식 한 끼가 얼마나 위로가 되고, 행복을 주는지. 돈이 없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다시 힘이 나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간다. 마음이 허하면 배도 따라 허해지는 것 같아서, 그런 날엔 나를 위해 맛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기분을 달래줄 영화를 고른다. 그럴 땐 어김없이 ‘음식’이 중심이 되는 영화들이다. 요리하는 장면,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장면,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사람을 위로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진다. 꼭 한 끼를 먹은 것처럼 밀이다.
카모메 식당
어디 있는지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 북유럽의 나라, 핀란드. 그곳의 작은 거리 한편에 한 일본 여자가 식당을 연다. 몇 달째 손님은 한 명도 없지만, 그녀는 오늘도 식탁을 정리하고 밥을 짓는다. ‘언젠가는 누군가 들어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묵묵히 보낸다. 그러다 마침내 한 명의 손님이 찾아오고, 이어서 핀란드에 온 두 명의 일본 여성과 인연이 닿는다. 그렇게 식당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따뜻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흰쌀밥을 짓고, 소금을 뿌려 맨손으로 꾹꾹 눌러 오니기리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어릴 적 소풍날 아침 엄마가 싸주시던 김밥이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깊은 마음이 담긴 행위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고, 어느새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이 영화엔 오니기리뿐 아니라 연어구이, 시나몬 롤 같은 다양한 음식이 등장한다. 하나하나 정갈하고 따뜻해서, 영화를 보다 보면 문득 나도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차려주고 싶어진다. 매일 밥을 먹고 산다는 아주 단순한 일이, 사실은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일인지. 카모메 식당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식은 결국 사람을 이어준다고 말이다.
라따뚜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 그곳의 유명 레스토랑에 한 남자가 요리사로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요리를 누구보다 잘하는 한 마리 쥐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펼쳐지는, 아주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독일어 공부에 한창 빠져 있던 시절, 나는 이 영화를 독일어 더빙으로 정말 20번도 넘게 봤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나중에 원작인 영어 버전을 봤을 땐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없이 반복해 보다 보니, 이 영화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픽사가 이 영화를 얼마나 진심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있을 만큼, 음식 하나하나를 허투루 표현하지 않았다. 칼질 소리, 소스가 끓는 소리, 재료의 질감까지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이 잊힐 만큼 생생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이렇다. “프랑스 바게트는 냄새가 아니라, 살짝 눌렀을 때 나는 소리로 맛을 알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도 빵집에서 바게트를 하나씩 눌러보며 ‘좋은 소리’를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요리를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묘한 위로를 받았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용기 같은 것 말이다.
아메리칸 셰프
요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정과 재능이 있는 한 셰프가 식당을 떠나 푸드트럭을 시작하게 되며, 다시 요리와 가족에게서 행복을 찾게 되는 할리우드식 이야기다. 영화 초반, 그는 인기 있는 기존 메뉴와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신메뉴 사이에서 갈등한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어 그 장면이 유독 깊이 다가왔다.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고 검증된 것들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내 안의 열망을 따라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것인가. 특히 나이가 들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게 되면 이 고민은 더 커진다.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큰 위기가 오는데, 그의 요리에 평론가의 혹평을 듣고 감정이 폭발해 식당을 그만두게 된다. 욱한 마음에 그만뒀지만, 아마 스스로도 "여기까지인가" 싶었을 것이다. 모두가 등을 돌린 듯한 상황에서, 자신이 진짜 재능이 있었는지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를 다시 일으킨 건 ‘초심’이었다. 푸드트럭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며,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전하고, 요리사로서의 즐거움을 다시 되찾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어린 아들과 푸드트럭에서 함께 일하면서 말한 한마디였다. “나는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고 위로받길 원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로는 주는 사람도 받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남편과 나를 위해 요리를 할 때, 그가 그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그 짧은 순간, 나 자신도 행복해지고, 위로를 받는다. 요리는 그렇게 주고받는 감정의 언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