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동화

by 브레첼리나

영화는 사진과 닮은 점이 많다. 독일어로 영화를 ‘움직이는 이미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진을 여러 장 잇달아 찍으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듯, 영화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예술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주제 의식을 찾게 된다. 왜 이런 작업을 했는지, 의도가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왜’와 ‘무엇’에 대한 질문이 끝나면, 이제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예술로 표현했는가? 예술가에게 있어서 ‘어떻게’라는 질문은 단순한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예술가와의 차별점이자 그 예술가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왜’나 ‘무엇’은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예술가의 작품 모티프는 의외로 단순한 경우도 많고,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그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다. 예술가라면 먼저 어떤 매체로 표현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사진, 그림, 영화, 조각, 문학, 음악… 장르의 선택은 그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 장르 안에서 어떤 ‘스타일’로 표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바로 그 스타일이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만드는 지점이다. 이 부분에서 독창성을 가진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이 바로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웨스 앤더슨 감독을 처음 알았다. 그 영화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줄거리나 메시지에서 감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가 가진 형식적인 부분, 촬영과 편집 방식이 일반적인 영화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웨스 앤더슨 영화 하면 바로 떠오르는 독특한 색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이한 영화는 많지만,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다. 나에게 웨스 앤더슨은 팀 버튼 이후로 가장 시각적으로 독창적인 느낌을 주는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색채가 화려하고 다양하다. 원색과 파스텔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화면 전체를 하나의 일러스트처럼 만들어낸다. 인물의 움직임은 단순해서 마치 2D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카메라도 수직과 수평으로만 움직이면서 깊이감이 줄어든다. 편집 역시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기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인물들은 대체로 엉뚱하고 아이 같다. 대사 또한 일상에서 쓰는 말과 다르다. 오히려 책 속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것처럼, 속마음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런 요소들이 겹쳐지면서 그의 영화는 실제 세계와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일까,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동화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 웨스 앤더슨 감독이 궁금해졌다. 보통 영화를 보면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들을 검색하게 마련인데, 이 영화를 본 후에는 곧장 감독을 검색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고 영화 포스터들을 보았는데, 역시나 본인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의 전작들을 하나씩 찾아서 보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전의 영화들은 주로 ‘가족’이 주요 소재였지만,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가족에서 조금 더 확장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예전 영화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인물들의 의상이다. <로얄 테넌바움>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연기한 ‘마고’라는 캐릭터가 입었던 의상들은 그 자체로 캐릭터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스트라이프 원피스, 밍크 코트, 명품 가방, 빨간 헤어핀, 스모키 화장까지—마고의 감추고 싶은 비밀이 동시에 드러나는 듯한, 묘하게 이중적인 인상을 남겼다. 앤더슨의 다른 영화에서도 의상은 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캐릭터의 정체성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의 동화 같은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흥미로운 점은, 웨스 앤더슨 자신 또한 늘 본인만의 패션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빈티지한 정장, 단정한 단발머리, 구두까지—그의 외모는 단순한 ‘감독의 모습’이라기보다 하나의 캐릭터처럼 보인다. 보통 거칠고 의상에는 무심한 듯한 이미지를 가진 다른 영화 감독들과 비교하면, 앤더슨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렇다고 패션에만 집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을 따라 하거나 억지로 독특해 보이려는 태도가 아닌, 내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철학이 그의 스타일을 진정성 있게 만든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예술’이다. 그의 영화는 그 자체로 예술이지만, 동시에 웨스 앤더슨이 생각하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철학이 작품 속에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예술을 단순히 미술의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예술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모든 장르와 영역으로 뻗어 있다. 그의 영화 속에는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분명한 기준과 철학이 드러난다. 그것은 예술가에게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나는 그 방향성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결국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앤더슨이 만든 그만의 동화 같은 세계에는 언제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는 듯하다.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그는 옛것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을 영화 속에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현실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것은 단순히 걱정 없고 행복하기만 한 세계라서가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싸우고 갈등하고, 때로는 잔인하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대, 점점 사람들 간의 소통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른이 되어 더 이상 동화를 읽지 않는 우리에게, 앤더슨의 영화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희가 어렸을 때 읽었던 그 동화를 잊지 말라.” 그리고 우리가 그의 영화에 빠져드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안에 여전히 그 동화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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