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내 삶의 한 부분이 될 때

by 브레첼리나

내가 처음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낀 순간은 음악을 통해서였다. 중학교 음악 시간, 처음으로 클래식을 들었을 때였다. 너무나도 맑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를 푸른 햇살 가득한 숲 속으로 데려가는 듯한 기분을 주었고, 그때 나는 비로소 황홀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런 감각은 클래식에서만 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동률의 음악이나 인디 밴드의 노래를 들을 때도 가슴 깊이 전율이 일며 소름이 돋곤 했다. 또래 친구들이 아이돌이나 댄스 음악에 열광할 때,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친구들이 결코 경험하지 못할 감정을 나는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은근한 자신감이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들과는 달랐다. 본능적으로,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친구들은 내가 품은 이런 감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사진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사진을 마주할 때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사진은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사진 속 풍경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그 속에서 내 미래를 그려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것이 매일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그 꿈을 따라 나는 독일에 갔고, 사진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미술관에도 자주 발걸음을 옮겼다.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공부이자, 내 작업에 영감을 얻는 방법이었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작품들을 가리지 않고 보았다. 모든 작품이 감동을 주지는 않았지만, 가끔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작품을 만나면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왜 내가 이 작품에 매혹되었는지 곱씹어 보았다. 그런 경험을 쌓으며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나만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사람의 취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나는 예술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고 있었다.


독일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무슨 공부를 하는지 묻게 되었다. 특히 나는 외국인이었으니, 독일에 온 목적이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대부분 먼저 물어왔다. “왜 여기에 오게 되었냐”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결국 내 꿈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공부한다고 하면 열 명 중 아홉은 큰 관심을 보였다. 어떤 사진을 찍는지, 좋아하는 예술가는 누구인지, 전시는 하고 있는지,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지… 독일 사람들은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마치 대화할 주제를 찾은 듯 기뻐하기도 했다. 그런 대화가 반복되면서 나는 예술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대화를 풍부하게 해 주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독일 사람들 모두가 예술에 깊이 관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는 전문가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얕은 지식이 금세 드러날 때도 있었다. 사실 이런 대화 방식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끊임없이 아는 것을 말하고, 또 내 생각을 묻고 대답하는 방식은 내게 훈련되어 있지 않았다.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너무 좋다” “아름답다” 같은 표현에 머물러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때때로 새로운 만남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또 사진과 예술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해야만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낀 것은, 그들의 삶이 무척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삶의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기는 모습은 삶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학생 시절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던 순간과 닮아 있었다.


나는 예술 학교를 졸업했지만 예술가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내 삶에는 언제나 예술이 있었다. 때로는 예술이 싫어질 때도 있었지만,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거나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조금은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알지 못했던 예술 작품을 접하거나 오래된 건축물을 마주할 때면 황홀한 감정이 몰려왔다. 물론 언제나 옛날의 예술에만 감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감탄한다. 지금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예술을 표현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예술이 시대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하며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모든 예술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이게 정말 예술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작품이 현대에는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동시대 예술가들이 예전과는 어떻게 차별화를 두고, 끝없이 쏟아지는 작품들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예술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려 한다.


예술은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철저히 개인적인 동시에 시대를 담는 보편성을 지닌다. 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 한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드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유효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예술로 불리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예술의 이름을 얻기도 했다. 내가 공부했던 사진이 대표적이다. 같은 분야 안에서도 예술과 상업이 공존한다.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예술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예술의 분야는 너무나 방대해서, 다 알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끌리는 것만 조금 알아도 마음이 이미 풍요로워진다. 내 삶이 한층 더 다층적이고 깊어지는 것이다. 우연처럼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은 결국 나를 독일로 이끌었고, 지금의 나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예술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내 삶 속에 존재한다. 가진 돈이 많지 않아도, 내 삶에 예술이 조금이라도 스며 있다면 나는 자신감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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