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갈망

by 브레첼리나

어렸을 적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여름날 거실에 누워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한참 바라보던 순간이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너무 강렬해 지금까지도 그 장면과 하늘, 그리고 그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유’였다. 마치 이 우주에 하늘과 나만 존재하는 듯했고,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진 듯했다. 하늘과 교감하는 것처럼 행복했고, 짜릿하기까지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유 모를 답답함을 자주 느꼈다. 집에 있을 때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심지어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조차 답답함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나를 즐겁게 하는 작은 순간들이 곳곳에 있었고, 그럴 때마다 답답함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친구와 함께 mp3에 담긴 음악을 들었다. 이어폰 한쪽씩 나눠 끼고 창가에 기대앉아 밖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내 mp3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곡들로 가득했는데, 그때 흘러나온 노래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였다. 마침 하늘은 저녁노을로 물들고 있었고, 그 순간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듯, 오직 나와 음악, 그리고 붉게 물든 하늘만 존재했다.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날 만큼 벅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느낀 감정 역시 ‘자유’였다.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오직 내 몸 하나만 존재하는 듯한 기분, 아무 고민 없이 온전히 나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내게 자유란 바로 그런 감정이었다.


늘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에 간 차인표가 나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 모습이 유난히 자유로워 보였다. 존경스럽다거나 훌륭해 보인다는 느낌보다는, 단지 그의 표정에서 자유가 묻어났다. 그 순간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며 오지를 떠돌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삶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유 없이 답답함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보다 울컥했던 내 마음에 비로소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야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배우고 싶다. 그리고 어려운 나라에 가면 학교를 세우고 싶다. 그때의 나는 그런 낭만적인 꿈을 꾸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삶이라고 확신했다. 이후로는 답답함이 덜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단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는데도 내 삶이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생각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나는 사진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그곳에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사람을 배웠다. 독일에서 내가 가장 자주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자유로워 보일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볼 때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볼 때도, 거리를 걷는 이들을 볼 때도 모두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늘 어디론가 떠나야만, 여행을 가야만, 자연 속에 있어야만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이미 자유로워 보였다. 너무나 질투가 났다. 저 사람들에게는 삶이 그렇게 쉬운 걸까? 걱정이 없는 걸까? 목표도 없이 오직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이어졌다. 나만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독일에서 오래 머물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걱정이 있고, 삶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았다. 독일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그 안에 삶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여전히 자유로워 보였을까? 내가 내린 답은 ‘여유’였다. 시간적으로, 또 마음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삶을 발전 없는 삶, 혹은 게으른 삶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적을수록 사람들은 더 자유로워 보였다. 아마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에 살던 시절, 한 달 정도 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배낭 하나만 메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인 민박이나 호스텔에서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나곤 했는데, 대부분은 큰 캐리어와 배낭을 함께 들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의 도로가 이렇게 구불구불하고 돌로 되어 있는 줄 몰랐다며, 캐리어 바퀴가 다 고장 나 버려 이 캐리어를 그냥 던져버리고 싶다고 푸념하곤 했다. 물론 내 배낭도 무겁긴 했지만, 상대적으로는 훨씬 자유로웠다. 그때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적을수록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그 후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되었다. 약 30일 동안 800km를 걸어야 하는 코스였다. 그 기간 동안 필요한 물건과 옷가지를 배낭에 넣고 다녀야 했기에, 나는 최소한의 짐만 챙겼다. 함께 걷던 친구는 유럽 여행도 같이 했기에 배낭이 상대적으로 무거웠는데, 걷는 내내 힘들어했다. 결국 그 친구는 걸으면서 하나둘씩 물건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작은 성당에 들어가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쉰 적이 있다. 그곳 한쪽 벽에는 A4 용지에 적힌 ‘순례자의 10가지 계명’이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한국 순례자도 많았는지, 한국어 번역본도 함께 있었다. 그중 한 구절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짐은 필요하지 않다. 짊어지는 것이 적을수록 자유롭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유로운 삶을 갈망한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자유는 여러 모습이었다. 처음의 자유는 단순히 강렬한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유는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삶의 주체가 과연 내가 되는지, 그리고 수많은 것들 가운데 무엇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자유였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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