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마음

by 브레첼리나

마음이 힘들고, 이유 없이 불안과 공포가 밀려올 때, 심리치료사는 눈을 감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장면을 그려보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떠올린 장면은 언제나 숲 속의 나였다. 산들바람이 스쳐가고, 나뭇잎이 흔들리며, 햇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숲길을 걷고 있는 모습. 그 순간을 깊이 떠올리면, 몇 분 전까지 요동치던 마음은 차츰 가라앉곤 했다. 자연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독일에 온 뒤, 나는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대도시라 하더라도 도심 곳곳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있었고,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울창한 숲이 끝없이 펼쳐졌다. 기차로 이동할 때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곤 했다. 뮌헨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자연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공원의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알프스 산맥이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시야를 가리는 건물도 거의 없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늘 근처 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언덕 위에서 뮌헨 시내를 내려다보며 멀리 알프스를 바라보는 순간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독일의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다.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자주 뮌헨으로 나를 찾아왔고, 우리는 도시락을 챙겨 기차를 타고 근처 알프스 산으로 향하곤 했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에 내리면 등산객들로 붐볐다. 우리는 여러 코스 중 우리 수준에 맞는 길을 골라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내 땀이 나서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야 했다. 배가 고파질 즈음 적당한 돌을 찾아 앉아 신발을 벗고 축축해진 발을 말리며 도시락을 펼쳤다. 지나가던 등산객들이 “맛있게 드세요”라며 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그 소박한 순간이 참 따뜻했다. 자연 속에서 먹는 밥은 어쩐지 꿀맛 같아서, 평소엔 특별하지 않던 음식도 그곳에선 유난히 맛있었다. 하산 후에는 늘 로컬 식당에 들러 맥주와 돈가스를 주문했다. 지친 몸을 단번에 달래주는 게 그만한 게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된 듯했다.


뮌헨에서 학업을 마친 뒤, 나는 남편이 있던 독일 동쪽의 작은 도시로 갔다. 대도시에서 살다가 작은 도시에 정착하려니 걱정이 많았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그곳은 자연이 풍성한 도시였고, 집에서 10분만 걸어 나가면 작은 산에 닿을 수 있었다. 주말이면 남편과 나는 늘 그 산을 올랐다.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의 미래를 그려 보며 걸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인근 도시까지 가곤 했다. 자전거길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특히 낙엽이 흩날리던 가을, 바퀴가 낙엽을 밟는 소리와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붉고 노란 나무들을 바라보며 달리는 순간은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날이면 책을 들고 공원 벤치로 향했다. 벤치에 기대어 앉아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삶이 힘들어도, 독일 사회 속에서 이방인으로 소외된 듯한 기분이 들어도 자연과 함께라면 견딜 수 있었다. 자연을 바라보면 마음이 조금은 느긋해졌다.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자연이 가르쳐 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제 할 일을 다하는 자연이 늘 존경스러웠다. 마음이 불안하고 강팍해질 때면 다시 자연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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