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이었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조명이 내 방을 꾸미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것이었다. 그날, 방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벅찬 기분은 거의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집을 가꾼다는 것, 작은 소품 하나를 두는 것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나는 고등학교 때 치아교정을 하느라 치과에 자주 다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시간마다 나는 ‘홈’과 ‘리빙’ 관련 잡지를 펼쳐보곤 했다. 잡지를 읽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잡지 속 집과 인테리어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 공간에서 살고 있는 듯한 행복이 느껴졌다. 언젠가 내 집을 이렇게 꾸며야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독일에 온 뒤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자취를 하거나 언니와 원룸에 살았기에, ‘집을 꾸민다’는 개념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어학 하며 지내던 방은 크지 않았지만, 오롯이 내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이 났다. 당시 한국으로 귀국하는 언니, 오빠들의 짐을 물려받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작은 소품들을 사 오기도 했다. 온전히 내 스타일대로 꾸밀 수는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얻거나 산 물건들을 조화롭게 놓아 보며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갔다. 몇 안 되는 가구와 소품들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방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졌다. 독일에서 나는 자주 이사를 다녔다. 기숙사를 옮길 때마다 내 물건들을 함께 챙겨가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 어떤 곳에 가든 익숙한 내 물건들이 함께 있으면, 그곳은 곧 나만의 아늑한 방이 되었다.
어학 과정을 마친 뒤 뮌헨에서 본격적으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뮌헨에서도 몇 번 기숙사를 옮겼는데, 처음에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 점점 가까운 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올림픽공원 옆에 있던 복층 기숙사였다. 원래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선수촌으로 쓰였던 건물인데, 지금은 학생 기숙사로 운영되고 있었다. 작은 방갈로 형태였는데, 워낙 인기가 많아 몇 개월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 나 역시 한 학기쯤 기다린 끝에 그 방을 배정받았다. 집은 작았지만 복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설레었다. 1층에는 부엌과 화장실, 수납장이 있었고, 2층에는 책상과 침대, 그리고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여름이면 학생들이 대부분 문을 열어두었는데, 산책하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각자 개성 있게 꾸며놓은 방들이 보였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살다 보니 내 짐도 조금씩 늘어났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인들이 두고 간 물건,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벼룩시장에서 산 소품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방은 점점 나만의 색깔로 변해갔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예쁘다”라고 말해줄 때면 괜스레 뿌듯했다. 무엇보다도 그 공간에서 나는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다. 이방인으로 사는 고독과 외로움도 집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라지는 듯했다. 내가 직접 꾸민 나만의 방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 남편이 있는 다른 도시로 이사하며 작은 원룸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침대, 책상, 옷장까지 갖추어진 기숙사에서만 살아왔기에, 아무것도 없는 집은 처음이었다. 전등 하나 없는 빈 공간에 가구를 들이고, 우리의 물건들을 하나씩 채워 넣는 과정이 새로웠다. 가구는 이케아에서 샀고, 생활용품은 이미 남편과 내가 각각 모아둔 것들이 있어 더는 구입하지 않았다. 문제는 물건들의 스타일이 제각각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통일된 느낌으로 꾸미고 싶었지만, 독일에서는 쉽지 않았다. 값비싸기도 했고, 이미 절약이 생활화된 우리는 있는 물건을 그대로 사용했다. 작은 집이라 책상 두 개를 놓을 공간이 없었다. 대신 가구 자재를 파는 곳에서 긴 나무판을 재단해 오고, 이케아에서 책상다리와 서랍을 사 와 우리만의 책상을 만들었다. 양쪽에 서랍장을 두고 긴 판을 얹어 가운데는 책상다리로 받쳐, 둘이 함께 쓸 수 있는 작업 공간을 만든 것이다. 공간은 협소했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가구를 사고 배치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무엇보다 신혼집이라 더 설렜다. 한국 친구들의 신혼집에 비하면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만의 감성으로 꾸민 우리의 집은 작아도 따뜻했다.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 역시 “너무 예쁘다, 작아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해주었다. 퇴근 후 집에서 쉬는 시간이 좋았고, 집에만 있어도 행복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마땅한 집이 없어 작은 투룸 빌라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공간조차 감사했다. 독일에서는 늘 원룸에서 지냈으니, 방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넓게 느껴졌다. 이사를 오며 짐을 많이 줄였다. 독일에서 쓰던 가구는 거의 다 팔거나 버리고, 정말 필요한 물건만 배로 보냈다. 짐은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고도 네 달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기다리던 박스들을 풀어 집을 꾸미니, 낯선 한국에서 오히려 독일의 기억이 스며드는 듯했다. 가구는 다시 새로 사야 했다. 익숙한 이케아에서 하나씩 들여왔다. 이케아 가구에 독일에서 온 물건들이 더해지니, 비록 한국이었지만 집은 여전히 독일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도 집에 와서는 “한국 집 같지 않다”며 좋아해 주었다. 얼마 전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내가 태어나 처음 살아보는 한국식 아파트였다. 방이 세 개에 화장실이 두 개나 있어 둘이 살기에는 오히려 넓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렇게 큰 공간을 갖게 되니, 이사 전부터 인테리어 구상을 하며 설렜다. 결국 우리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가구를 들이고, 기존 물건들을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집을 꾸몄다.
집을 꾸미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직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집을 꾸미는 것은 곧 나 자신을 꾸미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집에 정성을 쏟을수록 내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고, 나만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내 정체성 역시 드러남을 느꼈다. 어떤 때는 집을 꾸미는 내 모습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나는 집을 꾸미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집을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을 체감한다. 집으로 친구를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다양한 인테리어 시도가 SNS에서 공유된다. 독일에서도 집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가구를 조립하고, 아이들 스스로 방을 꾸밀 수 있게 한다. 집 안의 물건들만 보아도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집을 꾸미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고, 단순히 비싼 물건을 들여놓는 허세도 아니다. 오히려 나의 취향과 개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수많은 가구와 물건 중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 선택하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배치해야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무엇이 나를 아늑하게 만드는지를 묻는다. 그 대답들이 모여 집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공간을 다른 분위기로 바꾸고 싶을 때도 있다. 이렇게 쌓여가는 작은 경험들이 결국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