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삶

by 브레첼리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은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지역으로 이사했다. 모든 것이 달랐다. 사람들의 말투도, 성향도, 주위 풍경도. 키가 작고 소심하며 조용했던 나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겨우 익숙해질 무렵, 1년 후 같은 지역 안의 다른 동네로 또 이사를 가게 됐다. 이번엔 조금 더 빨리 적응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세 곳의 학교를 거쳤다. 이상하게도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다. 다른 친구들은 1, 2학년 때의 일들을 또렷하게 떠올리는데, 나는 아무리 애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4학년 때의 큰 변화가 너무 강렬해서, 그 이전의 기억들을 덮어버린 것 같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가, 내가 기억하는 내 삶에서 첫 번째 ‘떠남’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같은 곳에서만 살았다. 졸업 후 나는 집을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당시 내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을 집 근처로 정했다. 성적이 나보다 좋은 친구들도 수도권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이 무섭고, 새로운 지역으로 가는 것이 두렵다며 근처 국립대를 택했다. 나는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경기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며 첫 독립을 시작했다.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짐을 챙겨 아빠 차에 싣고 떠나는 날, 차 밖에서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평소 나는 눈물이 없는 편이었고, 엄마도 차가운 성격이었지만, 그날 엄마의 눈가가 살짝 젖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너졌다. 그 순간 알았다. 다시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은 없을 거라는 걸. 그렇게 시작한 대학 생활은 의외로 잘 적응했고, 어느새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졌다.


대학교 생활은 즐거웠다. 첫 연애를 했고, 지방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취 생활도 신나게 보냈다. 서울에 있는 언니를 주 1회꼴로 찾아갔고, 방학이면 아예 언니 집에서 함께 지냈다. 서울은 나를 설레게 하는 도시였다. 혼자서도 거리를 걸었고, 공연을 보러 가고, 쇼핑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내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사진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주변에서는 말리는 이들이 많았다. “타지 생활이 쉽지 않다”, “유학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멋진 삶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멋진 삶을 꿈꾼 적도, 타지 생활이 쉽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멋대로 나를 추측해 말했다. 그 말들은 내 결심을 흔들 수 없었다. 마침내 20대 초반, 나는 독일로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삶은 이미 익숙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전혀 다른 나라에서 이제부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독일 땅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쳤다. 그 바람은 유난히 싸늘하고 쓸쓸했다. 그 촉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처음 느낀 독일이었다.


독일에서 나는 세 개의 도시에 살았다. 그 중간에 밀라노로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10년이 넘는 타지 생활 동안 네 개의 도시를 거쳤고, 이사만 10번이 넘었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서쪽에서 어학 공부를 했다. 마침 그곳에 친척 언니가 살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 도시가 나의 시작점이 되었다. 독일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뒤 여러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남쪽 뮌헨의 한 대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거처를 뮌헨으로 옮겼다. 대학 생활 중에는 1학기 동안 밀라노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기도 했다. 뮌헨에서 보낸 시간은 5년이 넘었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 머문 도시가 되었다. 졸업 후에는 남편이 있는 독일 동쪽 도시로 이사했다. 거기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날 직장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거쳐온 도시들을 말했더니, 서쪽·남쪽·동쪽을 다 경험해 본 사람은 독일인 중에서도 드물다며 신기해했다. 그 무렵 남편이 졸업을 했고, 우리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제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마음은 이미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어디든 떠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때는 심지어 다른 유럽 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숙소에서 관광지로 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는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독일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오고 감’을 지켜봤다. 꿈을 안고 와서 학업을 마친 뒤 대부분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독일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한국에서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진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결정을 내렸다. 독일에서의 긴 시간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인생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어른들의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떠나는 일에 한 번도 주저한 적이 없었다. 두렵기는 했지만, 그보다 설렘과 기대가 훨씬 더 컸다. 다른 곳으로 갈 기회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언제나 ‘떠남’을 선택할 것이었기에 그것은 고민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에 살면서 가끔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그 설렘이 얼마나 컸는지, 한국에 살던 시절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고 그리워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다시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왠지 모르게 겁이 났다. 마치 내 삶이 거기서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니, 답은 단순했다. 나는 지금까지 ‘떠나는 삶’을 위해 살아왔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떠남이 아니라 ‘귀환’이었다. 나의 여정이 새로운 길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언젠가 나이가 많이 든 후에는 한국에서 살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계획하지 않은 시점에 귀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여전히 떠나는 삶을 동경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 인생은 늘 그렇게 흘러왔다. 언젠가 또 떠날 날을 기대하며, 지금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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