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록

by 하루나

우울증과 자해위험으로 입원 권유를 받기 전에 썼던 한 편의 일기.

누군가에게는 거칠고 그저 투박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작하는 말에 썼듯, 나의 이야기가 단 한 명일지언정

내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기에

최소한의 정제만 거쳐 있는 그대로를 담았다.


그리고, 시작하기 전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디든 털어놓는 것도 용기라고. 숨기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자고.’




"숨기는 게 때로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너무도 큰 상처가 되더라,


아픈 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그럴 수 있어.


그러니까 혼자 버텨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25.07.24 (수)


공황장애보다 자살충동이 더 무서운 하루였다.

도저히 내가 나 같지가 않고 이성을 잃은 짐승 같았다.

충동이 들 때면 어떻게 죽을까 빼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내 안의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죽고 싶지 않아서.

이제 알프람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을지 너무 두려웠다.


일기를 쓰는 와중에도 왼쪽 손목이 쓰라리다.

정말 이상한 건 자해라는 행위가 무서워서 해본다고 해야

기껏 해서 손, 팔을 물어뜯고 피멍을 남기는 게 다였던 내가

한번 그어보고 나니 사람들이 왜 자해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쓰라림이 이상하게도 안도감으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는 죽으려고 자해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끊임없는 충동에 그렇게 질색하던 알프람에 두 번이나 손을 댔다.

역시 효과가 빠르긴 한지 머리가 멍하다.


지금보다도 당장 내일 또 그럴까 봐

그리고 병원 가는 날이 일주일이나 남았다는 게

너무 두렵고 무섭다. 요즘은 자도 자도 잠이 온다.

그리고 가족들 없이 밖에 있는 게 너무 무섭고 힘들다.

공황발작보다 예기불안이 더 무섭고 힘들다.


갑작스러운 속마음이지만 아무도 나에게 '이겨내, 극복해, 일어나서 ~를 해'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몰라서 하는 진심이 담긴 조언이겠지만,

진심 어린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도 마음이 많이 아프거든..


'내 하루의 숨'은 그저 내가 떠나면 너무 많은 이들의 인생이 망가질까 두려운 나만의 걱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떠났을 때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이 먼지처럼 흩날려 사라진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남아서 살아갈 이들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내 인생에 찾아온 보물 같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무 상처도 주고 싶지 않다. 나처럼 아프지 말고, 그들은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내일을 난 또 살아갈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이 떠지는 거 사실은 되게 절망스럽다.

세상에 하루라도 더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나라는 사람에게 끝없는 하루가 주어졌을까..

내가 뭔가 해내야 하는 일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우울증을 앓으며 꿈이 있어도 이렇게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불현듯 생명의 전화 상담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남에게만 말고 나에게도 조금 다정해보라고, "

어렵다..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른다.

굳이 고를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끌리는 색도 없다.


나에겐 인간관계도 사실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내 사람과 아닌 사람. 아무리 조용히 살아가려 애써도

날 모르는 일부는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대놓고 괴롭히기도 했다.

처음엔 악을 쓰고 모른 척하며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는데,

늘 그랬듯 엔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데에 익숙해졌다.

함부로 마음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상처받기 싫어서.


물론 이건 내 생각이 아닌 가까운 지인들의 견해이긴 하지만,

7년 지기 친구조차 내 속을 모르겠단다.

너무 오랜 시간 이렇게 살아와서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방법을 잊은 것만 같다.


K-장녀의 특징이라고 우스개 소리로 대답하곤 하지만,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닌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건

주변 사람들에겐 상처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매번 고쳐봐야지,, 고쳐야지 다짐만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로잡혔으면 좋겠다.

이건 단순한 소비성이 아닌 진짜 아픔이니까.

'극복해', '이겨내', '겨우 이걸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 질환에 대해 알고 이해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웃고 있어서, 밝아서 몰랐다는 말이, 예민할 시기라 그런 줄 알았다는 말이,

그런 변명이 가슴 시리도록 아프다.


마지막으로, 내일을 살아야 한다면, 죽지 못해 흘려보내는 하루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사는 하루이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살아남아서 나 같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내일이 있기를 바란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극단적 선택'이라는

언론의 단어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으니까.

자살은 선택이 아니다, 자살은 절벽의 끝이다.


아침에 눈뜨기 두렵지 않은 날이 과연 올까 싶어 무섭지만,

방법이 없으니 또 하루를 살아간다.


소중한 꿈마저 잊게 하는 이 추상적인 아픔과 공포와 고통을

이제 나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일을 하기에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하나, 다시 일어날 다짐은 아직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올해 수능을 포기하고서라도 집중치료를 받고 싶고,

낫고 싶고, 단단하고 용기 있던 16살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상처가 아물고 생긴 붉은 흉터 위에

파란 장미가 예쁘게 피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마는


핀 꽃을 보느라 이리도 예쁜 꽃이


'흔들리며' 피어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 주기를


내일은 내가 살고 싶길 바라


조금은 웃을 일이 있길 바라


공허한 눈 속에 의지가 가득 담기길 바라


오늘도 살아갈 용기 내느라 수고했어,


잘 버텼어, 기특하다, 애썼어


오늘 밤엔 깨지 말고 푹 자자


제일 많이 응원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