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첫날인데 나름 의식을 치러야지."
백수 첫날. 아침 댓바람부터 남편 성화에 못 이겨 짐 실리듯 차에 탔다.
"여보... 원래 백수 첫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는 게 국룰 아냐? 어딜 가려고..."
"높은 자리에 임명되는 사람들 봐봐. 첫 일정이 현충원 참배잖아? 당신도 백수 현직 1일 차니까 의미 있는 곳에 가서 마음을 새롭게 해 보자는 거지."
남편이 데려간 곳은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였다. 남편은 서울 토박이라서 함께 서울에 갈 때면 남편이 살던 동네네를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나는 지방에서 나고 자란지라 특별히 맘먹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 같이 가보자고 얘기만 했었는데, 그게 오늘일 줄이야.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30여 년 전, 살고 있던 시골 동네가 신도시 개발지역으로 묶이면서 등 떠밀리듯 시내로 이사 나왔더랬다. 그때 우리 가족이 둥지를 틀었던 이 동네. 들로 산으로 뛰어놀던 선머슴 같던 내게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꽤나 위압적이었는데, 뜀박질이라도 하면 붉은 벽돌들이 내 위로 와르르 쏟아져내릴까봐 옹송그리며 종종 걷던 내가 떠올랐다.
저 반지하 창문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집 안으로 길게 들어오는 게 마냥 신기했었는데. 짤순이만 있던 우리 집에 처음으로 세탁기를 들인 것도 저 집에서였는데. 이후로도 저 동네에서 이사를 두어 번 더 다녔다. 다음 집은 2층이었고 그다음 집은 3층이었다. 엄마는 어두운 발소리를 벗어나 위로 위로 올라가는 데 필사적이었다. 지금 내 나이보다 열 살은 적었던 어린 내 부모는 그때 우리 남매를 데리고 없는 살림에 도시에 방을 얻느라 얼마나 막막했을까.
박제된 듯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 풍경에 어릴 적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미어지듯'이라는 단어가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욱신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많이 달라져 있길 바랐었다. 여기가 어디였는지 자리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달라져 있길. 그래서 어린 시절 서글펐던 기억들이 좀 더 어렴풋해질 수 있도록.
"북적북적 정감 가는 동네네! 당신 완전 골목대장이었지? 사방팔방에서 괄괄 거리다가 혼 꽤나 났을걸?"
감회에 젖은 나를 땡볕 아래에서 조용히 따라다녀주던 남편이 복잡해진 내 표정을 읽었는지 시답잖게 눙을 던졌다.
고맙네, 오늘.
시시콜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동네 입구에 생긴 파리바게뜨에 앉아 시원한 거 한 잔씩 마시고 돌아왔다.
나라의 큰일 할 이들이 과거의 영웅들을 찾아 마음을 다잡듯, 나도 지금의 나를 만든 어린 시절 나에게 다짐의 인사를 건네고 온 기분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 씩씩하게 차근차근 살아내 준 그 어린 날들 위에 더 견고하고 단단하게 멋진 날들을 이어가겠다고. 너무 거창하다고? 뭐, 나도 내 인생의 '큰일'을 해낼 거니까!
"오늘 당신 좀 멋졌어! 사실 당분간 놀겠다곤 했지만 구인 사이트 열어보던 참이었는데, 백수 첫날 멋지게 브레이크 걸어줘서 고마워! 나중에 정말 멋진 모습으로 이 동네에 금의환향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도 같이 와줄 거지?"
"당연하지!
난 서울 토박이고 고향에서 50년이나 살았잖아. 경치가 좋아서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지만, 가끔 그 동네 익숙한 길을 걸으면 기분이 푸근해지더라고. 매달 찾는 어머니묘처럼 말야. 힘든 기억이 많았더라도 새로운 휴식을 시작하기에 그 동네가 적격이라 생각했지. 금의환향 금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