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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리의 발자국이 선명해질 거야

1년 전, 나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남편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새 직장 출근 이틀차였던 남편이 신나게 회사 이야기를 풀어놓는 중이었는데,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누난 괜찮은 거지?"

"응? 뭐가? 무슨 문제 있어?"


답답했던지 동생은 곧장 전화를 해왔고, 뒤늦게 TV를 틀자 험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몇 시간 전까지 일하던 직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점심시간에 걸었던 운동장은 연거푸 내려앉는 헬기들로 어지러웠다.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TV 앞에서 꼬박 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출근길부터 많은 것이 변했다. 경비는 삼엄해졌고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평일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들의 함성은 추위를 뚫고 멀리까지 퍼졌다. 사무실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불현듯 10년 전 겨울이 떠올랐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이 매일같이 촛불로 뒤덮일 때 나는 서울시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겨울에도 시민들은 뜨거웠다. 세종대로를 가득 메우던 인파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촛불의 연대. 퇴근길 눈 앞에 펼쳐졌던 수많은 장면들은 이제 전율과 압도감으로 정제되어 머릿속에서 플래시백처럼 지나간다.


두 번의 뜨거운 겨울을 그렇게 지나면서 나는 자못 궁금해졌다. 나는 왜 이런 역사적인 순간들을 상징적인 공간 한복판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공직자의 자리에서. 지금까지도 그럴 듯한 답을 찾지 못했다.


1년 전, 남편은 광화문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도 인파가 몰렸다. 여의도는 응원봉의 물결이 뒤덮었다면, 광화문은 촛불과 태극기가 뒤섞였다. 극명한 분열과 갈등의 현장을 매일 목도하며 남편은 괴로워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일을 담당하며 나랏녹을 먹고 있었기에,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무력감마저 느낀다고 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계획이나 기대도 남달랐던 탓에 남편은 끝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단을 만든 사람을 더이상 상사로 모실 수는 없었다. 결국 남편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의미를 찾는 질문자로, 남편은 소신 있는 백수로 지내고 있다. 일상은 달라졌지만 그 일 덕분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좀 더 신중하게, 우리의 보폭으로 걸으며 서로를 응원한다. 이제 곧 눈이 내리면 우리의 발자국이 선명해질 것이다. 이 겨울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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