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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뭐, 내 맘이다

'국민추천제'를 아시는지.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의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추천하는 제도다. 기존에 '국가인재데이터베이스'라고 인재풀 비슷한 게 있었는데, 이걸 이번 정부에서 활용 폭을 넓히면서 주목받았다.


특히나 한창 장차관 임명할 때 관심 폭발이었는데, 무려 8만 건이 넘는 국민 추천이 있었고 그중에는 아이유, 봉준호, 유재석을 문체부 장관으로 추천하는 의견들도 다수 있었다는 얘기가 기사화되기도 했었다.


정말 참신한 진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창구인지, 아니면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끌기용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시도는 좋지 않은가. 국민이 국가 운영의 주체가 되도록 하겠다는 '국민주권정부'에 이렇게 딱 들어맞는 제도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오늘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남편을 '국민추천제' 사이트에 추천했다. 셀프 추천 비스무레하지만, 남편이 일 하나는 정말 잘할 거라는 걸 알기에 내 맘대로 등록해 버렸다. 이 추천을 누가 볼지, 어떻게 분류가 돼서 어디까지 올라갈지, 사실 누가 열어보기나 할는지 알 수 없지만 뭐, 내 맘이다. 내 기준에서 내 남편은 인재가 분명하니까.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그러는 건가 싶을 것이다. 국민추천제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면 알겠지만, 추천은 꼭 높은 자리에 국한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남편이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일해왔고, 그 경력을 활용해 일할 만한 적절한 자리에 추천을 해본 것뿐이다. 남편의 다리길이를 충분히 재보고 누울 자리를 찾아봤다는 얘기. 사실 나는 배우자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아직 남편에게 '콩깍지'가 다 벗겨지지 않았다.


솔직히 국민추천제의 결과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국민 추천을 반영해 임명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나처럼 궁금했는지 네이버 검색창에 '국민추천제'를 입력하면 '국민추천제 임명 사례', '국민추천제 결과' 등이 연관 검색어로 자동 완성되는데, 셀프 추천했다는 산림청장 빼고는 특별한 사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마저도 '누나'의 픽이 개입된 것 같다는 씁쓸한 얘기만 딸려오고 말이다.


뭐, 이미 누나의 파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그 힘을 타고 내릴 낙하산 순번 확정에 대기줄이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는 소문도 무수히 접했으며, 직간접적으로 경험도 해보는 중이지만 어쩔 수 없다. 누나에게 가는 뒷문을 모르니, 정문 출입구로 발을 내밀어보는 수밖에. 소용없는 일 아니냐고? 뭐, 내 맘이다.


남편에게 추천했다고 이야기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지인들이 추천해 주었었는데, 요즘처럼 위축되어 있을 때 나까지 합세하니 그래도 내심 기분은 좋은 것 같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미래 포부들을 줄줄 늘어놓는다. 그래, 오늘만큼은 동굴에서 나와 뜬구름 좀 타보자꾸나. 둥둥 떠보자꾸나, 낙하산보다 더 높이. 어화둥둥,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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