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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Aug 17. 2020

너의 이름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른 고양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잠을 거의 못 이루고 눈을 뜬 아침, 여전히 고양이는 숨숨집 안에서 자고 있었다. 밤새도록 숨숨집 안에서 잤나 보다 하는 순간, 화장실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서 고양이의 첫 끙아를 발견했다. 화장실이 바로 코앞이었는데! 심지어 오줌은 출근하려다가 신발장에서 발견하고 백스텝으로 들어와서 다시 청소를 했다. 그동안 여러 책과 영상, 글들을 통해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엄청난 냄새가 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전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얘가 길에서 도대체 뭘 주워 먹었길래 이런 냄새가 나나 싶었다.

내가 부스럭거리며 정리하는 동안 숨숨집에서 뭔가가 빛의 속도로 뛰어나오더니 옷장 밑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어제는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그래도 기운을 좀 차린 것 같아서 대견했다. 문제는 그 밑에서 나올 생각을 안한다는 것. 푹신하고 따뜻한 숨숨집을 버려놓고 왜 그 먼지 구덩이에서 나오질 않니...그리고 출근하기 전에 화장실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옷장 밑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간 지각하게 생겼다. 화장실 교육도 두 번째 동물병원도 퇴근 후로 미루고 우선은 출근을 했다.

옷장 밑 망부석이던 둘째 날 아침

퇴근 후에 나는 고양이를 담아갈 슬링백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집 근처 동물병원에 가볼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갔더니 아기 고양이는 여전히 옷장 밑에 있었다. 하루 종일 저기 있었나 보다 싶어 짠하던 찰나, 고양이가 여러 군데 숨겨놓은 대소변을 발견했다. 아주 신나게 돌아다녔구나. 내가 아주 큰 오해를 했네. 어제 첫 동물병원에서 구충제를 먹은 뒤라, 대변에...아니다. 아무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나는 고양이를 들쳐 메고 두 번째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접수를 하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어쩌지. ‘관리받는 고양이’처럼 보이는 게 목표였는데 제일 중요한 이름이 없다니. 사실 입양을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름은 붙일 생각이 그닥 없었다. 그렇지만 빨리 머리를 굴려서 그럴듯한 이름을 만들어줘야 했다. “여명이요.” 그렇게 이름 없던 아기 고양이는 강인함이 느껴지는 여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왜 이름이 여명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때그때 적당한 이유를 댄다. 나도 내가 그때 왜 여명이라는 이름을 댔는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아무래도 내가 아는 가장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나, 그 얼마전 업무 때문에 찾아봤던 아덴만 여명 작전이 생각이 났기 때문일수도 있고, 병원에 오는 길에 본 유명한 숙취해소 음료의 이름이 생각났기 때문일수도 있다. 이유야 뭐였든 지금은 그저 약해 보이는 여명이가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오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번 동물병원에서 나는 드디어 원하는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여명이는 심각한 병은 아니었고, 허피스 증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못먹고 관리를 제대로 못받아서 기력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여명이는 고작 500g이었다. 선생님은 조곤조곤 증상과 원인, 그리고 내가 해줘야 할 조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심장사상충 약을 바르고, 1차 접종 날짜를 예약한 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여명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했었는데, 큰 병이 아니라서 그저 기뻤다. 누나가 너 눈이랑 피부 다 나으면 좋은 가족 찾아줄게.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사는 동안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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