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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Aug 15. 2020

아기 고양이와 나의 첫 동물병원 방문기

고양이를 글로 배운 이의 의심 대잔치

길에서 묘연을 만나 집사가 된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망설임이나 고민 없이 고양이를 데려온 사람은 거의 없다. 읽을 때마다 누가 봐도 데려올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저렇게 고민하나 싶었다. 꼭 혼자만 결말을 모르는 추리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게 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한 시간 넘게 고민했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나는 결국 아기 고양이를 구조하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내 원룸도 작지만 아기 고양이는 더 작다. 좁은 공간이라도 골골대는 고양이한테 내어줄 공간 한 뼘은 있다. 고양이가 나을 수 있을 만큼만 아프다면, 다 나을 때까지 치료해서 좋은 가족을 찾아 입양을 보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나을 수 없을 만큼 아프다면. 좁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곳에서 얼마나 짧을지 모를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위험한 길 위에서 엄마에게서조차 외면 받으며 짧은 생을 마감하는 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아기 고양이를 데려갈 가장 가까운 동물병원을 검색하고, 나는 가방을 챙겼다. 동물을 키워본 적 없으니 당연히 이동장 같은 건 있을 리 없고, 고양이를 감쌀 수건과 에코백을 챙겨서 나갔다. 내가 나갔을 때 아기 고양이는 한 시간 전보다 기운이 더 빠져있는 상태였다. 수건을 감아서 집어 드는데도 낑 소리 한 번 안 내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 친구가 동물병원까지 가는 10분 남짓을 버틸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했다. 다행히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가방 안이 낯선지 꼼지락거리면서 고양이는 나에게 살아있음을 알려줬다.

사람도 고양이도 처음 가 봤던 동물병원

에코백에 고양이를 담아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물병원에 들어갔다. 그 병원에는 상주하는 고양이가 5마리 정도 있었는데, 다들 길에서 온 친구들 같았다. 그렇게 수의사 선생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는데 이게 오히려 나에게는 문제가 되었다. 고양이를 글로만 배운 내가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선생님은 아픈 곳이 없고 상태가 좋다고 하셨다. 고양이가 아프다고 하면 내가 버릴까 봐 염려하시는 것 같아서 나는 고양이가 다 나을 때까지 임보했다가 입양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보라는 말이 선생님을 또 불안하게 만든 것 같았다. 결국 선생님은 고양이가 건강한 상태라는 말을 반복하시다가 내가 기본 검사라도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나서야 범백 검사를 해주셨다. 그날 고양이가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검사의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방금 길에서 주운 것 같은 몰골의 고양이를 에코백에 담아왔으니,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동물병원에 있는 고양이 친구들도 다 그런 식으로 남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기 고양이가 뭔가 검사를, 그리고 아파 보이는 눈과 얼굴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처음 갔던 동물병원에서는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나는 선생님이 추천한 사료와 화장실용 모래만 사들고 나왔다. 선생님 말씀대로 진짜 안 아프고 건강한 상태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아니면 어쩌나 싶은 의심인지 걱정인지 모를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결국 어설픈 랜선 집사인 나는 전문가인 선생님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어 가까운 다른 동물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음 따뜻한 선생님이 계시던 그 병원에 더는 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길고양이를 주워와도 덜컥 걱정부터 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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