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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Aug 12. 2020

꼬질꼬질한 아기 고양이와의 첫 만남

사랑은 동네 편의점 문 앞에서 만나

우리 동네에는 터줏대감 고양이가 있다. 주로 편의점 앞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어디선가 튀어나와 야옹야옹 어필하며 먹을 것을 얻어냈다. 애교 많고 눈이 예쁜 삼색냥이지만 꾀죄죄한 모습에서 고단한 길 생활이 느껴져 마음이 쓰이는 친구였다. 그동안 나는 고양이가 어쩐지 무정하게 느껴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친구를 만나고 나서 밥을 종종 챙기며 고양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늦봄에 처음 만난 이 친구에게 ‘만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가방에 항상 고양이 사료나 간식을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냥덕으로 만든 장본냥, 만춘이

만춘이는 거의 날마다 편의점에 얼굴 도장을 찍었지만,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럴 때면 비는 잘 피하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궁금하곤 했다. 그리고 한두 달 정도 길게 자리를 비운 적도 더러 있었다. 사라지기 직전에 배가 불렀던 것으로 봐서 출산을 하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출산을 겪었을 만춘이의 아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만춘이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거워 보여서 아기들의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지만, 잘 키워서 독립을 시켰을 거라고 나는 애써 믿었다. 그리고 올해 늦봄, 만춘이는 자신의 이름 같은 계절에 또 사라졌다. 한참을 사라졌던 만춘이는 7월이 시작될 무렵 다시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만춘이가 처음으로 데리고 온 아기 고양이

매번 혼자 나타났던 만춘이가 이번에는 아기를 데리고 나타났다. 처음으로 만나본 만춘이의 아기는 작고 마르고 아파 보였다. 눈이 특히 아파 보였고 코 주변의 피부도 많이 짓물러 있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만춘이의 상태도 썩 좋지 않아 보여서 나는 두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종종 챙겨줬다. 언제든 식욕만은 훌륭한 만춘이와 달리 아기 고양이용 음식에도 반응이 시원찮은 아기 고양이를 보니 걱정이 됐다. 한참 발랄하게 뛰어놀아야 할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아기가 엄마보다 더 지쳐 보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되었을 텐데 이미 모든 기운을 소진한 것 같은 아기 고양이는 자주 작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길에 잠시 누웠다가도 흠칫흠칫하면서 깨어났다.

이러다가는 처음 만나본 만춘이의 아기가 여름을 못 넘길 수도 있겠다 싶어서 조바심이 났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던 나는 길고양이에 대한 책을 사고, 유명한 고양이 커뮤니티에 들락거리며 내가 뭘 챙겨주면 좋을지 공부를 시작했다. 고양이는 한 번에 적어도 두 마리 이상을 낳는다고 했다. 한 마리만 데리고 나타난 만춘이가 이번에 몇 마리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단해 보이는 만춘이의 얼굴을 보니 저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살려서 데리고 오기까지 얼마나 힘겨웠을지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만춘이와 내가 서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처음 만나 본 만춘이의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 무사히 독립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역할은 그게 전부일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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