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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Aug 19. 2022

내 고양이의 집은 어디인가

무주택 집사와 2주택 고양이가 사는 곳

처음으로 고양이와 함께 이사를 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도 여명이도 그제야 안정을 찾은 느낌이었다. 1인 가구의 이사도 쉽지는 않았지만, 1인1묘가 함께하는 이사는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었다. 다음 집이 내 소유라면 많은 문제들이 조금은 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입자 입장을 유지하며 다음 거처를 찾는 일은 여러모로 막막했다. 부동산 어플에 내 예산 범위의 물건을 검색했다가 거기에 반려동물 가능 필터를 추가하는 순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집은 1/10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눌러보면 이미 내 반려동물이 아니더라도 뭔가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비주얼의 집 사진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는 점점 늘어난다는데, 어째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은 이렇게 적은 걸까. 그 많은 반려가구들은 모두 자기 소유의 집이 있는 걸까. 내 예산이 애초에 너무 부족했던 걸까.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결국 계약 연장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 집이 왜 그렇게 없는데요!!!!!

이미 이 과정을 한번 거쳤더니 한동안 이사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운이 좋아서 계약 만료가 되기 전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물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반려동물에 대한 협상이 지난하게 이어지기는 했지만, 결국 여명이와 이 집 현관으로 함께 들어올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명이가 혹시 집을 상하게 만들면 퇴거할 때 보상할 것과 소음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것을 약속했다. 소음과 관련해서 내가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걸까 막연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입주를 위해 약속을 했다. 다행히 여명이는 내가 간식을 천천히 뜯어서 속이 터질 때가 아니면 잘 울지 않고, 울더라도 목청을 아끼는 편이다. 천천히 새 집에 적응하며 2달이 지나는 동안 여명이로 인한 민원은 없었고, 나는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이사갈 집을 어렵게 구하고, 여러 복잡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이사를 완료하는 건 사람의 문제다. 고양이의 문제는 새 집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낯선 냄새가 가득한 낯선 영역에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사람의 말을 이해한다면 그 과정이 조금은 수월하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나는 고양이를 조금 진정시켜 준다는 간식을 여명이에게 바치며 천천히라도 좋으니 무사히 적응해주기를 부탁했다. 다행히 여명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적응했다. 내가 그렇듯이 여명이도 새로운 공간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특히 여명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곳은 창문이었다. 옆 건물 벽이 바로 보이던 작은 창문에서 이제는 제법 많은 것이 보이는 큰 창문으로 바뀌었더니 하루의 절반 이상은 그 창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다. 안전을 위해 방충망도 안전 방충망으로 바꿔서 더 마음이 놓인다. 창문이 고양이한테는 TV라던데 인치를 크게 늘려준 기분이라서 뿌듯했다.

하루종일 창문에 붙어있는 고양이

집에는 금방 적응했지만, 여명이의 고난은 이사 2주 후의 주말부터 시작되었다. 그전에 살던 집은 워낙 좁아서 손님을 초대할 일이 거의 없어서 주기적으로 여명이를 보러 놀러 오는 동생 정도가 주요 손님이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나서 거의 매주 집들이가 있었다. 낯을 심하게 가려서 낯선 사람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여명이를 위해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집들이는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만, 아주 소규모로만 하기로. 그래서 일단 만날 약속을 하면 변동이 거의 없는 친구들과 동료들 위주로 날짜를 정해 초대했다. 내가 그런 사람들만 좋아해서 만남을 이어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가까운 사람들은 약속 시간이나 날짜를 바꾸는 일이 거의 없어서 집들이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여명이에게는 순조롭지 않았다. 여명이는 누가 오든, 몇 시간을 머물든 숨어서 나와주지 않았다. 그런 여명이에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집들이는 일단 이번 주말에 끝날 예정이다. 정말 (숨어있느라) 고생이 많았다.

다 집에 가라그래

집들이를 하러 온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여명이 캣타워가 정말 좋아 보인다는 말과 건물주에 숨숨집 부자인 여명이가 부럽다는 말. 말을 듣고 둘러보니 이미 여명이는 숨숨집이 두 개 있었고, 그 외에도 숨을 공간과 스크래처가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친구들이 집사는 무주택인데 여명이는 집이 두 채라며 웃었다. 예전 집보다 넓어지긴 했지만, 아직 공간이 아주 여유 있지는 않아서 여명이 짐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코너에 공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캣폴도 설치할 수 있을 텐데, 베란다 폭이 조금만 더 넓어도 캣타워 작은 게 하나 더 들어갈 텐데 하며 원룸에서는 해본 적 없던 고민을 이어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이사를 막 왔을 때는 거실과 방으로 공간 분리가 되는 것에 감동했는데, 이제 방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끝도 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사이, 여명이는 이전 집에서 그랬듯이 적응을 마치고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건물주의 삶이란...

분명히 부족한 것도 불편한 것도 있을 텐데 집사가 최선을 다해 마련한 공간을 만족스럽게 활용하는 여명이를 보면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이제 막 이사를 마쳐놓고 다음 집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가는 느낌이지만, 다음에는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여명이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넓으면 좋겠고, 벽에 여명이가 마음껏 오르내릴 캣스텝을 설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볕이 잘 드는 크고 환한 창으로는 계절마다 다른 꽃과 나무, 그리고 여명이가 좋아하는 새들을 마음껏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낼 여명이가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 아마 여명이는 이러나저러나 이사라면 질색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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