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고양이와 함께하는 첫 이사
첫 이사를 앞뒀을 때 여명이는 2살이었다. 태어난지 2달쯤 지났을 때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이 산지도 2년쯤 되었다. 사람 하나가 살기에도 비좁았던 내 방은 여명이 짐이 들어오면서 더 좁아졌다. 그나마 아깽이 시절에는 여명이도 작고 여명이 물건들도 작아서 덜 좁았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주먹만 하던 여명이는 한 보따리 고양이가 되었고, 여명이 덩치에 맞추어 고양이 화장실도 커졌다. 침대에 점프하기도 버거워했던 여명이는 이제 집에서 못 올라가는 곳이 없었고, 여명이 짐이 점점 늘어나서 내가 여명이 집에 얹혀사는 기분이었다. 고양이에게는 수직 공간이 중요하다고 해서 나는 내 가구들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어 줬다. 정작 여명이는 큰 불만 없이 구석구석을 잘 활용하며 살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나는 항상 공간이 좁다는 게 미안했다. 이번에 두 번째 생일파티를 하면서 다음 생일은 꼭, 조금 더 넓은 새로운 집에서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다행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이사 결정
여명이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 날짜를 확정하고, 다른 절차들도 하나씩 착착 진행했다. 착착 진행되지 않는 건 짐 정리뿐이었다. 나는 물건 정리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이다. 설상가상으로 좁은 집은 이미 내 짐과 여명이 짐으로 포화상태였다. 수납이 부족하다 보니 테트리스처럼 여기저기 꽉 들어찬 짐을 꺼내서 정리하는데 시간이 생각보다도 더 많이 필요했다. 여명이 물건은 이사 당일까지 사용해야 하니까 미리 챙겨두기가 쉽지 않아서 일단 미뤄뒀다. 여명이의 첫 캣타워도 이제 여명이에게는 작고, 많이 낡아서 이번에 바꿔주기로 했다. 동생이 집에 올 때마다 지옥에서 온 캣타워라고 이제 좀 바꿔주라고 성화더니, 이번에 이사할 때 캣타워를 선물해줬다. 캣타워를 바꿔줘서 여명이도, 나도, 동생도 행복해졌다.
이사를 앞두고
이사를 앞두고 여러 가지 걱정이 있었지만 그중 제일 큰 공포는 여명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2년 동안 여명이가 현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줬던 든든한 방묘문은 이사를 시작하기 전에 철거해야만 했다. 그리고 새로운 집에도 이삿짐이 다 들어오기 전까지는 방묘문을 설치할 수 없다. 그래서 방묘문을 뜯기 전에 여명이는 지금 집을 떠나서 새로운 집으로 미리 가있기로 했다. 새벽같이 동생과 함께 여명이를 미리 이사할 집으로 옮겨두기로 했다. 다행히 새로운 집이 지금 집에서 도보 5분 거리라 후딱 옮겨놓고, 동생은 새로운 집에 여명이와 함께 있기로 했다. 여명이를 옮겨놓은 뒤 나는 다시 돌아와 이사가 시작되기 전 방묘문을 미리 뜯어놓기로 했다. 여명이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이 이삿날 여명이를 1:1 밀착 케어할 예정이긴 했지만, 사고라는 것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를 일이라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자려고 누워도 잠이 안 왔다. 많은 고양이들이 그렇겠지만 여명이도 환경이 바뀌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난 설 연휴에 본가에 데려갔더니 낮시간 동안은 식음을 전폐했었다. 낮에는 침대 밑에 꼼짝 않고 있다가 식구들이 하나둘 잠들기 시작하는 밤이 되면 슬슬 나와서 물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나랑 잠깐 놀기도 했다. 그 불편한 생활을 며칠 동안 했더니, 6kg이었던 여명이는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5.4kg가 되어있었다. 이번에는 다시 돌아올 집도 없는데 새 집에서 적응을 못하면 어떡할지, 나중에는 적응을 하더라도 이사 당일에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아프면 어떡할지 계속 고민이 됐다. 고민한들 답이 없는 문제라서 그냥 누워서 골머리만 앓고 있는데 여명이가 내 옆에 와서 척 누웠다. 그러더니 몸을 말고 금방 잠이 들었다. 고작 2살 먹은 여명이도 첫 이사를 앞두고 이렇게 담담하게 자는데, 이사를 여러 번 겪으면서 30년 넘게 살아온 내가 이렇게 불안하다는 게 문득 우습게 느껴졌다. 꿀잠을 자기 시작한 여명이 덕분에 나도 마음이 조금 놓여서 잠깐 눈을 붙였다.
드디어 이사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이 깼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는지 일찍 눈이 떠져서 우리는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아침 6시 전이라 이렇게 어둑어둑한가 했더니 흐린 거였다. 그러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더라도 여명이는 새로운 집으로 옮겨놔야 했다. 동생이랑 둘이서, 노여워서 울고 있는 여명이를 들쳐 메고 빗속을 뚫고 새 집에 도착했다. 전날 미리 캣타워도 설치해두고, 화장실이며 밥그릇 물그릇 모두 쓰던걸 그대로 옮겨놔서 당일에는 일이 좀 줄었다. 동생에게 여명이 전담을 부탁하고 나는 번개같이 돌아와서 방묘문을 뜯어내고 짐 옮길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오신 이사 사장님이 “이삿날 비가 오면 잘 사는데 운이 정말 좋으시네요!” 하셔서 날씨 때문에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많이 덜어졌다. 꼼꼼하고 손이 빠르신 사장님과, 툴툴거리면서도 누나 이사를 도와주러 온 막냇동생 덕분에 짐 정리는 빨리 끝났다.
한참 짐을 옮기고 있는데 집주인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와주러 가고 싶었는데 다른 볼일 때문에 들르지 못해 미안하다며, 종종 만나던 귀염둥이(여명이를 이렇게 부르신다)를 앞으로는 못 만나서 아쉽겠다고 하셨다. 어딜 가든 좋은 사람들한테 사랑 많이 받으면서 잘 살 거라고, 다른 건 더 잘할 것도 없으니 건강만 잘 챙기라는 당부를 하셔서 괜히 마음이 찡했다. 내 집은 없지만 집주인 복은 있는 나는 매번 이렇게 좋은 집주인 분들을 만나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 수 있어서 감사했다. 4년 가까이 살면서 좋은 일도 아쉬운 일도 많았지만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아련한 마음으로 예전 집을 떠나 새 집으로 왔더니 노여운 여명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 말로는 여명이가 너무 낯설어서 한참 울다가 불과 몇 분 전부터 겨우 캣타워 숨숨집에서 안정을 찾기 시작한 느낌이라고 했다. 이동가방 끈만 보여도 싫어서 멀찍이 도망가던 녀석이, 얼마나 집에 돌아가고 싶었으면 이동가방 근처에 가서 계속 울었다고 해서 맴찢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가방을 타고 돌아갈 집은 없으니 여명이도 새로운 집에 적응을 해야 했다. 밥도 물도 안 먹고 버티던 여명이는 내가 동생들과 짜장 탕수육 파티를 시작하니까 그제야 나와서 밥을 조금 먹었다. 숨숨집에서 나와, 낮은 포복으로 돌아다니는 여명이를 보니까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거실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짐이 널려있었지만 긴장이 풀렸더니 갑자기 너무 피곤해서 내일로 미루기로 하고 여명이한테 물과 밥을 챙겨준 뒤 나도 쉬기로 했다.
이사가 끝나고
일주일은 걸려야 적응을 할 것 같았던 여명이는 의외로 이삿날 밤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거실에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은 짐 사이를 밤새 킁킁거리고 우당탕탕 뛰어다녔다. 아랫집이 비어있지 않았으면 층간소음 빌런이 될 뻔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밤새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내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적응을 못해서 속이 상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렇게 요란하게 할 일인가 싶어서 기가 막혔다. 이제 거의 적응을 마쳤지만 아직도 초인종이 울리거나 누가 집에 오면 평소보다 더 경계하고 언짢아하는 중이다.
아직은 나도 여명이도 새로운 집에 적응을 하는 중이다. 예전 집에서는 필요 없었던 안전 방충망과 인덕션 덮개를 준비하고, 여명이 동선을 살피며 좀 더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가구 배치를 조금씩 바꾸는 중이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첫 이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신경 쓸 일이 많았다. 많이 지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걱정했던 어떤 사고도 없이 무사히 마무리해서 감사한 마음이다. 여명이랑 새로운 공간에서 지지고 볶으며 건강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