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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Aug 21. 2020

그 고양이의 특이한 취향

검소하거나 혹은 궁상 맞거나

여명이가 우리 집에 와서 처음으로 가졌던 장난감은 동생이 사 왔던 쥐돌이였다. 빨간 원형 통 안에 쥐돌이가 뱅글뱅글 도는 형태로, 나름 스크래쳐 기능까지 갖춘 장난감이었다. 지금이야 여명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부동의 1위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떻게 쓰는지를 모르는 여명이에게 동생이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하는지 몸소 시범을 보여야 했다. 동생이 직접 쥐돌이를 툭툭 치며 가지고 놀고 스크래쳐를 긁는 동안, 일부러 그러는 건지 우연인 건지 여명이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래 네가 봐도 못볼꼴이지? 가지고 노는 법은 몰라도 그 통 자체는 마음에 들었는지, 여명이는 곧잘 장난감 위에 앉아있곤 했다. 이왕이면 귀엽게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동생은, 여명이가 웅크리고 앉은 것도 너무 귀엽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그림과는 많이 달랐겠으나 동생과 여명이가 모두 만족해서 어쨌거나 해피엔딩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와 동생은 장난감을 몇 차례 사다 날랐다. 아직도 한 줌인 여명이 몸에 비해 너무 큰 장난감은 좀 버거울 것 같아서 강아지풀, 낚싯대 등 크기가 작은 장난감으로 골랐다. 땀이 배어 나올 정도로 신나게 흔들어줬는데, 여명이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얘가 혹시 앞을 못 보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반응이었다. 아직 여명이가 기운이 좀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나중에 기운을 차리면 그때 놀아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명이가 좋아하는 건 따로 있었다. 의외로 정답은 집안에 있었다.

처음에 차가운 바닥에서만 자는 게 안쓰러워서 바닥에 담요를 깔아줬었다. 사람도 꾹꾹이를 하고 싶어질 정도로 푹신한 담요였는데, 여명이는 절대 그 담요 위로 올라와주지 않았다. 넓게 펼쳐 놓으면 굳이 좁은 맨바닥을 찾아가서 잠을 자는 고집 센 고양이였다. 진짜 이상한 애를 주워왔다고 투덜투덜하며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런데 맨바닥에서 약 올리듯이 나를 보던 여명이가 갑자기 내가 개어 놓은 바지 위에 올라갔다. 집에서 잠옷으로 입다가 이젠 이걸 버려야 될까 고민하던 낡은 바지였다. 그날부터 그 바지는 여명이의 애착 바지가 되었다. 내가 그 바지를 입으려고 하면 여명이는 슬픈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고 눈빛 공격에 못 이겨 바지를 다시 돌려주면 번개같이 바지 위로 올라갔다. 침대가 아직 낯설어서 침대 위에 올려주면 잽싸게 뛰어내려 가던 여명이는 애착 바지를 깔아주면 몇 시간이고 침대에서 꿀잠을 잤다. 푹신한 담요는 그렇게 다시 서랍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여명이 픽은 친환경 수세미였다. 강아지풀을 팔이 빠져라 흔들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여명이는 동생이 언니 한 번 써보라며 가져온 수세미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캣닙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 결국 그 수세미는 여명이에게 양보하고, 나는 새 수세미를 사야 했다.

이무렵에 찍은 사진에는 항상 애착바지와 수세미가 함께 찍혀있다

어느 날 애착 바지 위에서 수세미를 안고 자는 여명이의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자기 주려고 사 온 물건들은 거들떠도 안 보더니 왜 저렇게 궁상맞은 물건들에 환장을 하는가. 바지도 좀 푹신한 수면 바지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지금 보내줘도 호상인 낡을 대로 낡은 바지를 하필 그렇게 좋아해서는. 여러 장난감을 다 마다하고 고른 게 수세미인 것도 기가 찼다. 오죽했으면 자는 여명이 사진을 본 엄마가 애 장난감 좀 사주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좋은 담요도 장난감도 다 사람 취향이고 사람 욕심이었다. 여전히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여명이의 검소한 (혹은 궁상 맞은) 취향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한 달쯤 지나 이제 장난감의 맛을 알았는데도 여명이는 여전히 애착 바지와 수세미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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