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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May 19. 2024

종종 홀로 운다는 당신에게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많이 우는 사람과 울지 않는 사람 중 한 쪽이 되어야 한다면 주저없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우는 법을 잊는 것은 인간다움의 한 부분을 잃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들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휴가이므로, 즐거움을 여행지에 맡겨둔 양 기대감에 차서 오고 아쉬워하며 돌아간다. 그렇지만 몇 달 이상을 떠나 있는 장기 여행자는 사정이 다르다. 뜻밖의 설렘과 감동이 주어지는 것은 맞으나, 전반적인 감정의 범위나 역치는 점차 이전의 생활과 비슷하게 맞추어진다. 긴 여행을 위해서는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일상의 규격이 짜여야 한다. 그 안에는 당연히 기쁨과 즐거움뿐 아니라 슬픔의 자리도 있다(있어야 한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 그건 꿈이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단단한 목소리 없이 낯선 침대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는 일은 힘에 부쳤다. 꿈속에서 폭격기가 일행과 내가 있는 건물 바로 옆을 포격했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먼저 빠져나왔다. 누군가를 구하고, 먼저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 순간 엄마아빠가 생각났다. 내가 죽는 것은 내 부모에게도 사망 선고와 같을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들의 물리적인 죽음과  빠져나가지 못한 나로 인한 내 가족의 정신적 죽음 사이에서 지독한 변명을 하는 심정으로, 살고자 했다. 슬픔이 한 사람을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로 만들 수 있음을 꿈 속의 나는 어떻게 감지한 것일까. 그 폭격은 예고된 것이었지만 예상 밖의 장소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꿈에서 깼는데도 숨이 차고 발목이 시큰거렸다. 오늘의 꿈은 나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소실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장면들이 깨어나지도 잊혀지지도 못할 현실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지금도 폭격을 겪는 마을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다친 수많은 이들은 비할 수 없이 극심한 공포를 날마다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꿈에서 막 깨어나 이를 악물고서 그들을 떠올렸다. 나는 이 생생한 두려움으로 함께 울 수 있을까.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던 러시아 친구는 몇년 전에 많은 사람이 죽은 사고를 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무얼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시간이 잠시 필요했는데, 그것은 제주 여행과 세월호가 나에게 도무지 하나의 단락 안에서 잇따를 수 없는 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무서운 꿈이 아니라 몹시 슬픈 꿈이었다. 그리고 지독한 슬픔을 겪을수록 우리는 이것이 그저 무서운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끝내 이해하지 못할 슬픔들을 건너다보며, 이 글을 쓰는 동안만이라도 그 슬픔에 함께 붙들려 있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나 때문에 많이 운 사람이다. 나의 죄가 괴로워서 울기보다는 나의 힘듦이 무거워서 울었고, 나로 인해 상처받을 타인을 향한 미안함보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더 많이 울었다. 연결된 모두의 슬픔보다 나의 오롯한 슬픔에 훨씬 많은 눈물을 쏟아부었다. 내 것이 아닌 슬픔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가져와 거리를 두고 향유하던 것은 아닌지 슬픈 눈으로 뒤돌아본다.


당신은 종종 홀로 운다고 했다.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다 알지 못하므로 감히 말하자면, 나는 당신이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좋다. 자기만의 이유로 울어본 사람이라야 다른 이유로도 울 수 있다. 홀로 울어본 사람만이 누군가의 옆에서도 함께 울 수 있다. 그 시간이 쌓여 슬픔을 응시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허락되기를 기다린다. 슬퍼하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는 나와 당신이기를 힘껏 기도한다.



사랑을 담아,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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