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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May 04. 2024

즐기기를 주저하는 당신에게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트빌리시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발걸음 닿는 대로 걷다 보면 갈 만한 곳들이 다 나온다. 길거리를 걸으며 문득 이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걷고 돌아다니다가 뭔가를 먹고 숙소로 돌아가기를 6개월 동안 반복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행에서는 무엇이든 기대할 수 있지만 그 기대가 죄다 예측 너머의 것이라, 동시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십대 중반의 이 귀한 시간과 지금까지 모아 온 돈을 세계여행에 쓰겠다는 말은 멀리서 보면 젊음이고 청춘이지만, 그 안에는 유한함에 따라붙는 조바심과 불안이 여전히 있다.


떠날 때에는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또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정리한 건 여행에 싸들고 가는 짐밖게 없었다. 삶은 맥락을 갖고 있어서 그걸 함부로 절단하고 떼어낼 수 없는 듯하다. 내가 당신을, 당신이 살아온 흐름 안에서 이해해가듯이 나 스스로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주어진 시간이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을 두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나의 욕심일까, 누구나 지닌 욕망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삶을 추동하는 희망 같은 걸까. 그러다 안간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계속해서 찾아 헤매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처럼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아까워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을 죽이는 일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아픈 일이었다.




순수하게 무엇을 즐거워해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상황이 마음을 짓눌러서, 혹은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즐길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 알 수 없어 행복해보이는 타인의 모습에 마음이 괜스레 가라앉은 적도 있다. 행복할 것 같아 시작한 일을 상대만큼 즐기지 못할 때는 나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렇지만, 즐거움 또는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태도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금세 사라지기도 할 것이다. 삶에 대해 마음을 열고 기쁨을 흡수하는 일은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질문과 대답의 시간을 거치면서 우리는 아주 천천히, 삶의 면면들을 즐기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해야 살 수 있는’ 무언가보다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무언가가 더 강력하게 우리네 삶을 끌고 간다. 전자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틀 안에서 배우고 체득하지만, 후자는 각자의 절박함으로부터 발견되기 시작한다. 그런 절박함을 한켠에 품고 생명력, 살아감의 감각, 생기를 갈구하는 일은 이미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타성과 관성에 젖어 서서히 힘을 잃던 마음을 뒤적여 남은 불씨를 찾는 심정을 아는 사람만이, 그 불씨를 소중하게 다룰 수 있다.


제목에 쓴 ‘즐기기‘는 ‘행복하기’로, 나아가 ’살아가기‘로 확장되어 읽힐 수도 있겠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살아 있는 것이 그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것이 크고 힘이 세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당신이, 우리 자신의 살아있음으로 서로를 끌어당길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우리가 가진 생명력으로 죽어가는 마음들을 힘껏 끌어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언제나, 살아있는 것들을 향해 무방비하게 끌려갈 준비를 하도록 하자.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삶의 굽은 길들을 즐길 수 있다면 어떨지.



사랑을 담아,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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