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 산책
호수공원에 운동하러 온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나도 엄마도 그랬다. 평일 아침 요가와 헬스 수영을 번갈아 하던 엄마는 전염병으로 모두 폐쇄되자 공원에 걸으러 나간다고 했다. 뛰고 싶었지만, 실천력이 부족해 바깥 기온이 오르길 기다리고 나는 엄마가 나가는 게 기회다 싶어 파란 추리닝으로 빠르게 갈아입고, 마스크를 잊지 않고 나섰다.
분명 봄이 다가오는데 전염병이 돌고 있어 집에만 있으면 계절이 아직 겨울 어디쯤인 것 같다. 껍데기가 벗겨져 마른 나뭇가지 위로 샛노란 색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수유나, 털북숭이 봉오리를 오므리고 하늘을 치켜 보고 있는 목련 나무는 그걸 모른다. 이제껏 더운 나라에 있다가 와서인지 아직 겨울이란 게, 차가운 공기에 냄새가 있다는 게 설렘을 주지만 그래도 새순이 돋아나는 걸 보고 있자니 뭉글뭉글하니 벅차다.
엄마는 걷고 나는 뛰었다. 오랜만의 달리기였다. 요가를 한 덕인지 호흡이 안정적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엄마에게서 멀어져 한참 달리다가 오랜만의 달리기에 너무 무리해선 안 되겠다 싶어 발목이 조금 아파올 때쯤 유턴을 해 돌아갔다. 엄마는 멀리서 달려오는 나를 보고 아빠 같다고 했다. 나와 엄마와 아빠가 이렇게 산책을 하는 날엔, 엄마와 나는 걷고 아빠는 뛰었다. 마라톤을 수십 번 나간 아빠는 우리를 두고 멀리 갔다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곤 했다.
호수공원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달랐다. 일 다닐 땐 퇴근하고 종종 뛰러 오거나 친구와 밤 산책하러 오던 곳이라 낮의 풍경을 보지 못한 게 오래되기도 했지만, 많은 게 달라져있단 건 알았다. 호수 주위를 덮고 있던 높은 갈대는 목이 잘려있고, 중심부의 광장은 타일을 다 들어내 새로이 단장했다. 엄마는 매년 봄이면 이렇게 갈대를 다 베어내고 한 해가 지날수록 갈대는 새로 자라고, 푸른 모습이었다가 갈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광장에는 커다란 조형물이 있었다. 조형물 앞 작은 돌에 설명이 새겨져 있었다. “외가리를 상징한 조형물...2002” 이전에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엄마도 본 적 없다고 했다. 2002년에 만든 거면 어디서 옮겨온 걸까? 근데 외가리였다. 왜가리가 아니라. 엄마는 이런 건 시에 알려야 되지 않겠냐고 검색을 하다가 손이 시리다며 관뒀다.
공원 위에는 운동기구가 꽤 많이 놓여 있다. 나는 윗몸 일으키기와 거꾸리와 허리 돌리기와 하늘 걷기 같은 걸 했다. 엄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 이어폰을 꽂고 운동기구에 올라 나와 거리를 두고 통화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 친구는 엄마가 딸이랑 운동하러 나갔다는 말에 배가 아프더라고 말했단다. 나는 그다지 좋은 딸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