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어, 가을만의 향기가 나는 밤이면 나는, 이종사촌 오빠와 외숙모의 무덤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돌아가신지 20년이 넘은 외숙모를 나는 잘 기억치 못한다. 얼굴이 하얗고, 음성이 작았다는 것 외에는 내게 외숙모는 사진 속 사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건 그 분의 빈 자리이리라. 어릴 적부터 오빠의 응어리진 가슴을 보아 온 나이기에 어머니 산소에 가자던 오빠를 아무 말 않고 따라 나섰었다.
이미 도시화된 대사골을 지나 또 다시 숯골을 지나 도깨비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오빠의 차를 타고 가는 밤길의 공기는 복잡하게 뒤엉킨 나의 머리를 스치며 낮에 본 가을 하늘처럼 맑게 해 주었다. 훅, 바람이 내 이마를 스칠 때마다 가슴 속이 시원해졌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나무 냄새, 솔방울 냄새, 그리고 고요한 산의 밤공기 냄새. 그렇게도 좋아하는 것들을 잊고 살다 다시 찾은 느낌이란 말로 다 형용키 어려웠다.
상쾌한 기분으로 고개를 오르던 나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호화로운 네온으로 물결치는 도시의 바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섬 같은 산. 도깨비 고개. 옛날, 화적이 많아 도깨비 고개라 불렀다는 그 곳은 네온으로 둘러싸여 너무도 예뻤지만 어쩐지 나는 그 산 구석구석 틈바구니마다 슬픔이 베여 있는 것 같았다.
차의 헤드라이트가 아니었더라면 숲이 우거져 한 줄기 빛도 없는 그 길을 못 오를 성 싶었다. 달빛도 없는 그 밤, 10여분을 오르니 비탈지던 곳이 평평해졌다. 그 곳이 고개의 꼭대기인 모양이었다. 평평한 땅의 중간쯤에는 커다랗게 잘 뻗은 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서 있었다. 내 팔로 안으면 세 아름은 될 성 싶었다. ‘멋지다’를 연발하며 살짝 시선을 돌리니 그것보다 조금 작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안아보니 딱 한 아름이 되었다. 그 나무를 후레시로 한참이나 이리저리 비추어 보는 내게 오빠는 ‘아버지가 심은 나무야.’ 했다. 외숙모가 돌아가시던 그 해에 어디서 아기 느티나무 두 그루를 구해다 한 그루는 산 입구에 심으시고, 한 그루는 고개 위에다 심으셨다 한다. 무덤에서 50m가량 떨어진 그 곳에 느티나무를 심으시고, 물을 주시고, 거름을 주시는 외삼촌의 뒷모습이 생각나 나는 가슴이 착찹해졌다.
느티나무는 이제 스무 살이 넘었다. 재혼을 하신 외삼촌은 차마 그 곳을 찾지 못하셨던지 이제 그 곳에 가지 않으시는데도 내가 한참이나 눈을 위로위로 돌려야 가지의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잘 자라 있었다.
그 곳에서 바라보니 진주 시내가 훤히 보였다. 한번도 살아생전 돌아다니시지 못한 곳을 외숙모는 긴 시간 누워서 보시는가, 했다. 무덤가 풀숲에선 풀벌레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세상의 떠들썩함이 온통 풀벌레 소리에 묻혀 고즈넉했다.
오빠와 나는 도깨비 고개를 걸어서 저편으로 가 보았다. 약간 걸어가니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갈랐다. 자세히 보니 고개는 끊겨 있고, 그 아래엔 터널의 입구가 있었다. 서진주 톨게이트가 생기고 도로가 개통되면서 터널이 생긴 것이다. 잘 닦여진 도로 양 옆에는 가로수처럼 수은등이 줄지어 빛을 품고 있었다. 도깨비 고개의 한적한 고요와는 이질적인 고요였다.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해 버티고 섰는 가로등의 빛이 무덤가의 어둠보다 내게는 더 적막같이 보였다.
나는 고개 위에서, 아니 터널 위에서 밑을 보며 마음이 텅 비어지는 듯하였다. 차들이 씽, 하고 지나칠 때마다 이 고개는 얼마나 심장이 서늘할까. 느티나무의 긴 뿌리가 단단한 시멘트 터널에 닿아 그런 사실을 알고 죽지나 않을까, 나는 걱정이 되었다.
오빠는 터널을 뚫으면서 있던 느티나무는 없어졌다고 하였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홀로 있어서일까? 그러고보니 느티나무는 옆으로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었다.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선듯한 나무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도 느티나무는, 심한 태풍이 와도, 심장이 뻥 뚫려도, 눈이 아프도록 화려한 불빛들을 뒤로하고 반토막 난 도깨비 고개를 잘도 지키고 있었다. 저 화려한 세상 속에서 좋은 약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도깨비 고개에 묻힌 외숙모를 외삼촌의 마음으로 지키고 있는 저 나무.
그날 밤, 오빠와 나는 오래도록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외숙모와 외삼촌의 사랑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생각나면 그 곳에서 잠시 누웠다 간다는 오빠. 나는 오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지만, 오빠는 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겉으론 늘 웃으면서도 오빠의 엄마 얘기는 물기가 서렸다. 이젠 아픔이 수그러질 때도 됐건만 마지막까지 고통 중에 돌아가신 외숙모를 쉽사리 잊지 못하는가 보다.
네온의 불빛은 점점 줄어들고, 풀벌레 소리는 커져갔다. 나는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며 ‘니가 있어 든든하다.’고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않고 느티나무 아래에서 눈물을 삭히는 오빠의 등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엄마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