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진 Sep 23. 2021

아픈 것은 죄

나의 유년시절 이야기

내가 엄마 등에 업혀 다닐 만큼 어렸을 땐 그렇게 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커가면서 큰 병치레 없이 대체로 건강하게 커갔다.

가끔 감기가 걸리거나 수두를 앓은 적이 있지만 클수록 면역이 좋아져서 조금씩 더 건강해져 갔다.

하지만 그렇게 가끔 걸리는 감기나 치통도 엄마에겐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다.

생활이 짜증이 나서 그런 건지 동생과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는 화를 내고, 왜 아프냐고 야단을 쳤다.

엄마의 불벼락이 무서워서 아픈 것도 말을 하기 힘들었다.


살면서 아빠의 좋은 점이 몇 가지는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동생과 내가 아플 때 챙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건 무관심했는데 아플 때만큼은 병원을 데려가거나 약국에서 약을 사 온다거나 했다.

그래서 지금도 엄마에게 그것만큼은 아빠가 훨씬 좋은 부분이었다고 말씀드린다.

수두가 나서 동생과 나란히 수두를 앓을 때 병원을 데려가고 분홍색 약을 꼼꼼하게 발라준 것도 아빠였고, 다정한 말로 표현하는 것도 아빠였다.


사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 자라는 중에는 이런저런 병치레도 있을 수 있다.

그게 너무나 당연하고, 혼낼 일이 아니다.

너무 당연한 것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었다.

심지어 때리는 일도 있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상처 받는 일이 더 많았다.


지금의 동생과 나는 그게 돈 때문에 그런 거라는 걸 잘 안다.

병원에 가면 당연히 병원비가 들어가고, 별 것 아닌 질병에도 엄마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매일 일수를 빌려 갚기도 수도 없이 했고, 일한 것은 보람도 없이 어딘가에서 아빠가 진 빚더미를 엄마에게 슬그머니 책임 전가하는 일이 반복됐으니까.

사실 그 시절 엄마는 아빠가 연하였음에도 항상 존대를 했었다.

부부끼리 서로 존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반말을 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존대를 했었다.

그리고 상스러운 말을 하거나, 화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사실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사이도 아니었던거지.

그래서 곪아가는 속을 어디 꺼내놓을 곳이 없었던 것이기도 해서, 항상 엄마의 마음속 고름은 우리에게 화내는 것으로 돌아오곤 했다.


누굴 탓해야 할까…

원인 제공한 아빠의 탓이 제일 크지만, 그렇다고 감기 따위로 아픈 동생과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돼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철저히 엄마가 잘못한 일이다.

그런 가시 돋친 말들이 미래의 우리들에게 화살이 되어 여기저기 박힌 채로 살게 되기 때문에 어른이라면 미래의 자식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엄마와 아빠도 처음 하는 부모니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조금만 자식들과도 대화를 하고, 상의도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철들었었고, 진지한 대화를 좋아했으며, 부모님을 좋아했었는데 친구처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어땠을까…….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지금 돌이킬 수 없는 그 과거 시간 속으로 돌아가 엄마를 보듬고, 나와 동생을 보듬어 줄 수 있다면 현재의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 그 모든걸 지켜보고 상처받고 계셨던 외할머니를 보듬을 시간을 엄마에게 준다면 지금의 엄마는 좀 더 편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좁은 방에서 공부하는 내 등 뒤에 누워 구슬프게 신세타령을 하신 외할머니의 상처는 아물 수 있었을까.


이전 07화 말하기 힘들었던 지도위원 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