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 인생은 불안해 하고 남의 인생은 확실하게 본다. 당연히 24시간짜리 영화와 1시간짜리 영화가 같게 보일 리 없다. 아니, 요즘은 타인과 1시간 이상 마주하기는 하던가. SNS를 통해 1초만에 슥 지나치는 게 전부다. 영화 크레딧도 그것보단 느릴 테다.
‘남의 인생평가 위원회’는 그런 심리를 이용한 어플 사업이었다. 사람들은 평소에 하던 대로 남의 인생을 평가하면 되고, 평가글을 올릴 때마다 루비색의 가상 보석이 하나씩 지급된다. 그러니까, 제3자의 입장에서 남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도 일종의 돈 되는 재화라는 관점이었다.
보석을 많이 모으면 특전이 있다. 1,000개 이상 모으면 자신의 행복도 진단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무조건 대박이 나는 구조라니까. 보석을 1,000개 모았다고 쳐. 진짜로 그 사람들이 자기 행복을 평가받으려고 할까? 오히려 꺼려하지.”
재수가 없어서 이름도 재수인가. 동창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안목을 자랑하는 녀석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가 하는 사업은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 놀음, 사기성의 말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기 인생이 불안한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유료로 가입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무료로 가입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거였다. 그러니 돈도 고객이 내고 서비스도 고객이 제공하고 중간에서 돈만 챙기는 사업 형태였다.
“간단한 거야. 중간에서 가상 보석 놀이만 시켜주면 된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사기가 아니면 뭐냐고.”
“뭐가 사기인데? 말해 봐.”
재수가 정색했다. 그가 내려놓은 맥주잔이 오늘따라 유독 쨍한 노란빛이다. 그가 몇 번 참다가 결국 표정을 굳힌 거라는 걸 안다. 나는 다른 동창들처럼 좋은 말을 한번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타입이었다.
그가 말해보라는 듯 눈썹을 확 치켜올렸다. 위로 세운 그의 머리카락이 정확히 주파수를 잡는 안테나처럼 곧았다. 확신에 찬 그의 모습에 오히려 내 논리가 당도 없는 탄산처럼 무색하게 흩어지는 걸 느꼈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나는 내심 긴장했다. 소리 안 나게 목을 가다듬었다.
“결국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아무런 이득도 못 얻는 거잖아.”
“1,000개 모으면 쿠폰을 준다니까? 이용하지 않는 건 그 사람들이야.”
“그럼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해야지. 백화점 금액권으로 바꿔주면 이용 안 할 사람이 있겠어?”
내 말에 동창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맞네, 할말이 없네, 수근대며. 그들은 이 싸움에 점점 집중했다. 나는 얼굴이 벌겋게 오를 정도로 고무되었다. 겨드랑이 아래가 자꾸만 들썩거렸다.
“그럼 거래가 성립이 안 돼.”
“그게 무슨 궁색한 궤변이지?”
“내 인생을 평가해서 받은 돈으로 남이 백화점을 간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사람들이 평가를 받고 싶어 할까? 의뢰를 안 하게 될 걸. 물론 그렇게 번 돈으로 뭘 사고 싶어할 사람도 없을 거야. 그러려고 평가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네 사업 자체가 허상이라는 거야.”
회심의 펀치를 날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재수가 핏 웃으며 맥주잔을 다시 들어올렸다. 언젠가부터 도수 높은 안경도 벗고 이마도 훤히 드러낸 녀석의 깨끗한 피부가 노란 액체에 비쳐 찰랑거렸다.
“지금 기분 좋지 않아?”
재수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넌 그걸 갖고 가는 거야.”
실제 삶을 사는 사람들과 평가만 하고 싶은 사람, 수요와 공급이 맞는데 안 이어줄 이유가 있어?
그는 내게서 시선을 돌려 동창들에게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