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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Oct 15. 2023

바다은행 (2)

직장인 3분소설

3


회사 복도에서 윤지를 봤다. 윤지는 목에 건 사원증을 만지작거리며 사내 교육 일정표를 보고 있었다. 나는 코너 뒤에 숨어 메시지를 보냈다. 자주 하는 장난이었다.


[저녁 먹자 ]

“하.”


윤지가 짧게 한숨 쉬었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비딱하게 내려다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마치 전교 1등이 꼴등의 성적표라도 본 모양새였다.


윤지는 저녁 여덟 시에야 답장을 했다.


[미안, 나 배터리 없어서 이제 봤다.]


답장을 한 다음 윤지는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강사가 가리키는 칠판에 다시 집중했다.


머리를 누가 콱 쥐었다 편 듯이 피가 빠르게 돌았다. 뒤통수를 너무 세게 맞으면 이런 기분이 되는구나. 넋이 나간 채로 강의실 창문 안의 윤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렇게 집중할 줄 아는 애였나. 사내 교육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강사 몰래 사탕을 뜯어 먹으며 고등학생처럼 킬킬댔었다.


나는 문득 윤지가 무서워졌다. 동시에 영어학원까지 쫓아 온 내가 한심해지고 참을 수 없이 입 안이 떫어졌다.


나는 강의실 복도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마이크로 울리는 강사의 목소리, 사람들이 복도 사물함에서 책을 툭툭 챙기는 소리, 그들이 지나가며 뱉는 TOEIC이니 TEPS니 하는 말들이 내 귀를 통과하지 못하고 머리 위로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윤지는 무한히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 윤지에게 한심한 친구가 됐을까.



4


그 다음날부터 나는 안경이라도 바꿔 낀 듯 회사 사람들의 속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귀에 들리는 말, 눈에 보이는 얼굴 말고도 그 아래를 지나가는 다른 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선 회사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매년 연봉 협상 때 별 고민 없이 주는 대로 사인을 했고, 별 고민 없이 사람들한테 내 연봉을 말했었다. 난 그런 거 신경 쓰고 예민해지기 싫어서 매년 그냥 사인한다고도 말했다.


그때 아무도 웃지 않았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거였다.


‘어머, 자기 너무 가식적이다.’


그때 한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난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지금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자기는 돈에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들은 돈에 연연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그 때는 그저 그 선배가 꼬인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악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엘리베이터에서 두 직원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아니, 그 속뜻을 가늠하며 날카롭게 깨닫는 중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탄 두 직원은 구내식당에서도 자주 본 이들이었다. 나와 윤지만큼 친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년엔 연봉을 얼마나 올려 주려나?”

“아, 좀 올려보려고?”

“뭐 그냥. 작년에도 꽤 올려서 아쉬울 건 없긴 한데.”

“다른 데 오라는 데는 없고?”

“너는 어때?”


그들은 자신의 인생이 상대방보다 좀 더 나음을 확인하기 위해 숨막히는 탐색 중이었다. 계속해서 돌려돌려 떠 보는 피곤한 대화만 하고 있었다. 현대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바른 삶의 자세라고.


한 사람의 인생은 실적과 연봉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 돈에 연연해서 협상에 진지하게 신경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최소한의 가치를 확인받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사실. 자기 연봉을 아무렇지 않게 떠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 그리고 선배가 짚은 내 모습은 정확한 내 모습이었다는 사실.


내 얼굴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들이 내렸다. 난 다시 혼자 남았다.


사실 난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존감이 충천한 상태였다. 인문대를 졸업한 신분으로 부서져라 노력해서 힘들게 여기에 들어왔다. 메이저 은행 입사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 향해서. 내 주변에 같이 인문대를 나온 동기들, 다 고만고만한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몇 년 째 우리 과에서 ‘제일 잘 된 애’였다. 언제나 나는 자신감이 있었고, 누구든 내 취업 비결을 궁금해했다.


그게 금이 간 건 혜나가 해외지사에 합격한 날부터였다.


“선배, 저기요.”


그 선배가 지나가기에 붙잡았다. 나처럼 인문대를 나와 고군분투, 혜나처럼 동기들 중 제일 먼저 승진하고 해외 파견도 다녀와 지금은 명실상부 초고속 루트를 탄 선배였다.


“응.”

“해외 파견 제도 말이에요.”

“자기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선배가 반색하며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해나갔다. 면접 준비 같은 것들보다도 일단은 스펙이 있어야 발이나 비벼볼 수 있다고 했다. 외국어 점수부터 일단 시작하라고. 실적과 인사고과 관리도 놓쳐선 안 된다고. 그 다음은 금융, 컴퓨터, 시사 상식. 어느 순간부터 나는 듣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듣기 싫었다.


사실 정말 묻고 싶은 건 그거였다.


안 하면 안 되는지.

대학 나오면서 다 소진했는데, 더는 못하겠는데 그러면 이상한 건지.


내가 듣고 있지 않다는 걸 눈치챈 선배의 표정이 언짢아졌다. 네가 그럼 그렇지, 문돌이가 은행에 들어와서 살아남기가 쉬운 줄 알았냐고 따져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게 왜 취업하면 끝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냐고 속으로 따졌다.


자리로 돌아오자 책상 귀퉁이에 적어 둔 조회수가 보인다. 1738. 그 글의 조회수는 몇이나 올랐을까. 한 번 더 확인사살받기 위함일까, 이제까지 외면해왔던 것에 직면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회사 게시판을 다시 열었다.


조회수 1948. 아무도 관심 없을 줄 알았던 3년 전의 공지사항을 사람들은 그 일주일 새 많이도 찾아 읽고 있었다. 나는 책상 구석에 놓인 계산기를 양지로 꺼내 들었다.


1948 - 1738 = 210

210 ÷ 7일 = 30


동기모임 있은 지 7일. 그 날 참석한 동기 30명.


윤지는 사실은 30명이나 더 존재했다. 아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찾아봤다는 거면 사실상 210명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설마 전부 다 다른 210명? 나는 이 건물 전체가 무서워졌다.



5


황망히 회사를 빠져나왔다. 금방이라도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 하나도 그 속의 세계를 가늠할 수가 없어 두려웠다.


벤치에 가까스로 앉았다. 가파른 숨을 몇 번 오르자 좀 안정됐다. 고개를 젖혀 올리자 목에서 뼈 소리가 났다. 높은 유리 건물이 햇빛에 반짝였다. 회사는 아플 정도로 눈부셨다. 밖에서는 그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다은행, 고객을 위해 끊임없이 헤엄치겠습니다.


건물 외벽에 걸린 회사 슬로건이기도 했고 내가 면접에서 당차게 외친 마지막 한마디이기도 했다. 애초에 약속은 내가 어긴 거였다.


저 슬로건 위에서 순박하고 인자하던 임 차장님이 떨어졌었다. 바다 밑으로. 애써 떠오르지 않으면 가라앉는 곳에서.


아마 이 지점이 맞을 거다. 나는 고개 숙여 그 자리를 응시했다. 핏자국이 까끌한 땅바닥에 한동안 불그스름하게 남았었다. 시간이 지나자 새하얀 스프레이가 소금처럼 뿌려졌다. 그런다고 완전히 가려질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것 말고도 신경쓸 일이 너무 많았다. 사람이 외면하니 완전히 덮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분연히 울먹이며 탄원서를 내밀었을 때 직원들은 다들 불편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피했었다. 단순히 이해했지만 그 또한 이제야 알겠다. 사람들은 나를 한심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빴고 나만 제자리였으니까. 회사는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기요.”


그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리자 벤치 옆의 조경 옆으로 검은 면접 정장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빛나는 눈으로 내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고 있었다.


“혹시 이 은행의 인재상이 뭐였죠?”

“네?”

“면접을 너무 많이 봐서 헷갈리네요.”

“아,뭐였더라…….”


그거 의미 없어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회사의 인재상이 실제로 이 회사에서 일하는 데 굉장히 긴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어린양의 세계를 벌써 깨고 싶진 않았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창조…….”

“아! 창도세화!”

“네?”

“창조, 도전, 세계, 화합. 맞죠? 감사합니다! 아, 제발 합격만 하면 좋겠네요. 멋있으세요!”


그녀는 ‘창도세화’에 결부시켜 준비한 자기소개를 중얼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 친구는 언제 눈을 뜨게 될까. 합격이 끝이 아니라는 걸 언제 알게 될까. 그건 그저 보기 좋은 수면에 불과하다는 걸.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나를 은근한 우월감이 붕 띄웠다. 어렴풋하던 그 우월감의 실체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일순간 선명해졌다. 내 존엄은 어떤 것도 아닌 이 회사에 있었다. 이 사원증에. 목에 걸린, 목이 달린.


나는 건물로 다시 들어왔다. 바스락바스락 점점 빠르게 걸었다. 블라우스 단추에 부딪히며 딸랑거리는 사원증의 존재감을 느끼며.



6


지난날 수영장에서 윤지가 약간의 우월감을 담아 던졌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별 수 있어?”


킥판을 놓고 물 밑으로 잠깐 잠수했을 때, 친구는 파다닥파다닥 끊임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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