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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Apr 08. 2023

자존심의 시대

직장인 3분소설

주선자가 사진을 달라고 한다.


아주 잘나오지도, 못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골라 보낸다. 못나온 건 초장부터 이미지를 깎아먹을 수 있고 잘나온 건 실제 소개팅 현장에서 깎아먹을 수 있으므로 적당한 걸 선택하는 건 내 오래된 법칙이었다.


연락만 나누는 단계에서는 ‘평범하군’ 정도만 할 수 있는 사진을, 실제 현장에 나갈 때는 그것보다 좀 꾸미고 나가는 게 제일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선택이 어려워졌다. 만나기도 전에 거절을 당했다. 그 굴욕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 생각났다. 반년이나 지났는데도 불쑥불쑥 떠올라 뇌리를 쳤다.


세상 모든 소개팅 상대들이 상식적일 거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만나기도 전에 까일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잘나온 걸 보낼 걸. 내 기억에 그 남자는 꽤 괜찮았기 때문에 더 기분이 상했다.


후회는 곧 그를 인성 문제자로 만드는 것으로 옮겨갔다. 아니, 자기는 뭐 얼마나 잘생겼길래 만나보지도 않고 거절을 해. 진짜 사진만큼 생긴 거야, 뭐야. 자기가 뭔데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냐는 말이야. 자기가 뭔데.


-휴정아, 아직이야?

-네, 언니. 오늘중으로 꼭 보낼게요.


자기가 뭔데, 라는 질문은 휴대폰 갤러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로 옮겨왔다. 나는 뭔데. 지금 보내는 사진을 통해 뭘 표현하고 싶은 건데. 찜찜한 질문이 가슴 아래를 맴돌았다.


어리석고 의미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시간을 허비했다. 소파에 누워 사진 몇 개를 확대해봤다가 멀리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때 보냈던 사진을 다시 봤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별로였을까.


아니, 소개팅을 하기 싫었던 것도 아니고, 어쨌든 하기로 했으면서, 사진을 보자마자 못 만난다고 하는 건 도대체 무슨 무례란 말인가. 곱씹을수록 기분이 나빴다.


그의 무례한 행동은 주선자까지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주선자인 진영 언니는 그날 일을 나에게 열 번쯤 사과했다. 그런데 사과도 한두번이지 계속 듣다보니 기분이 상했다. 그냥 그 사람이 무례한 거지, 그렇게까지 나한테 미안할 일인가? 나는 그날밤 거울을 다시 한참 봤다.


-휴정아, 아직이야?


자꾸 재촉하는 언니도 짜증스러웠다. 솔직히 이게 다 자기 때문 아닌가. 내가 왜 사진을 고르는 데 오래 걸리는지 모르지 않을 거다. 그일로 열 번이나 사과를 한 사람이.


-언니, 사진 보냈어요.

-응, 네 번호 전달할게. 이번에는 정말 괜찮은 애야. 성격도 모난 데 없고.


언니의 말이 더 압박으로 다가온다. 모난 데 없는 성격인데도 또 거절당하면 내가 문제라는 건가? 아무래도 오늘밤 상대에게서 연락이 올 때까지 나는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이놈의 피곤한 소개팅, 진영 언니가 아니었으면 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나는 ‘그 사건’ 이후 모든 소개팅을 거절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진영 선배 통해 소개받은 최준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 후에 온 메시지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됐어. 된 거야.


순간 나는 내가 그날의 굴욕을 이번 소개팅으로 만회하려는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만나기도 전부터 거절할 정도로 별로는 아니라는 것, 그걸 확인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진영 언니의 소개팅을 다시 받아들였던 거고.


나는 다시 풀썩 드러누웠다. 마음에서 오랜 곰팡이처럼 퀴퀴한 냄새가 났다. 이대로 아로 파묻혀 사라져 버렸으면 싶었다.


진영 언니가 보내온 그의 사진을 눌러보았다. 솔직히 별로 끌리진 않는다. 그러면서도 답장을 입력하는 손끝은 신중했다. 어느 정도 관심을 표해본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네, 안녕하세요. 사진 속 서점, 광화문 교보문고네요.

-책 좋아하시는군요. 멀지 않으시다면 그쪽에서 만나뵐까요?


협소한 강줄기가 마침내 바다로 빠져나온 듯 너른 안도가 찾아왔다.


이렇게 나는 내가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나를 알지도 못하고 평가를 내려버린 그 때문에 난 당분간 나를 스스로 평가하는 법을 잊어버렸었다. 다시 답장을 입력했다.


-전 좋아요. 요즘 읽는 책 있으세요?


애프터까진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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